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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 칼럼> 頓悟漸修논쟁과 제3후보

2002-08-12
올해 대선후보들을 보면서 중국 선불교의 6조 대사 법통잇기 과정을 떠올리게 된다. 시공(時空)의 격차까지 겹쳐 있는 정치와 종교를 직접 견주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고 상황전개가 다른 측면도 없진 않지만 흥미로운 비교대상임이 분명하다.달마(達磨)대사가 중국에 들어온 뒤 선종(禪宗)의 5조 대사가 된 홍인(弘忍)의 유력한 법통승계자로 신수(神秀)와 혜능(慧能)이라는 두 제자가 있었다. 출신 배경과 학벌, 인생역정 등을 살펴보면 신수는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후보, 혜능은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후보와 닮은 점이 적지 않다.

귀족출신인 신수는 오래전부터 자타가 인정하는 홍인대사의 정통파 수제자(首弟子)였다. 상대적으로 유복한 집안에다 학벌 엘리트 코스를 거쳐 대법관과 감사원장, 국무총리 등 요직을 지낸 이후보와 흡사하다.

이와는 달리 혜능은 일자무식에다 가난하기 짝이 없는 나무꾼 출신이다. 상고가 최종학력인데다 법조계와 정계에서도 대부분 비주류로 성장한 노후보는 나뭇짐을 지고 부잣집을 찾아갔다가 주인의 금강경 읽는 소리에 반해 가르침을 청했던 게 홍인대사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던 혜능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수행방법론에서도 신수와 혜능은 대조적이다. 신수의 수행법은 때때로 떨어내고 닦는다는 이른바 '점수'(漸修)로, 혜능의 그것은 단박에 깨닫는다는 '돈오'(頓悟)로 불린다.

홍인대사는 나이가 많아지자 법통을 물려줄 후계자를 뽑기 위해 수많은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깨달은 진리를 시로 지으라고 한다. 자신있게 일어난 신수는 이런 시를 지었다. "내 몸은 진리의 나무요, 내 마음은 맑은 거울대이다. 때때로 떨어내고 닦아내서 먼지가 끼지 않도록 하자"
누구나 인정하는 수제자인 신수의 시가 끝난 뒤 한동안 감히 시를 짓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맨끝자리에 앉아 있던 혜능이 벌떡 일어나 도전장을 내민다. "진리란 본래 나무처럼 구체적인 것이 아니다. 마음이란 것도 받침대에 붙어 있는 거울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다.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인데 어디서 먼지가 일어난다고 하는가"
두 사람의 시는 신수의 경우 '점수'를, 혜능은 '돈오'를 대변한다. 시를 듣고 난 홍인대사는 혜능에게 마음이 기울어진다. 하지만 혜능에게 법통을 물려줄 경우 비정통파인 나무꾼 출신을 후계자로 삼는다는 반발이 거셀 게 틀림없어 한동안 고민하게 된다. 고심 끝에 혜능을 한밤중에 남몰래 불러 자신의 옷과 밥그릇을 전해준 뒤 남쪽으로 달아나라고 일러준다. 혜능은 17년간이나 산속에 숨어 살다 마침내 새로운 종파를 연다.

나중에 혜능의 종파가 중국 전체를 거의 지배하게 되지만 당시에는 혜능의 입장을 남종(南宗), 신수의 입장을 북종(北宗)이라 일컫게 될 정도로 노선대립을 보인다. 물론 '돈오'가 좋으냐, '점수'가 우위이냐는 논쟁은 보수와 진보논쟁만큼이나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혜능의 남종과 신수의 북종은 훗날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하나로 합쳐진 수행법으로 거듭난다. 깨달은 뒤에도 더 닦아야 한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가 그것이다. 일종의 제3의 길인 셈이다.

한국 조계종의 창시자격인 지눌의 수행법도 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性澈)스님의 도전을 받았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 홍인대사의 입장에서 법통 계승자를 찾아야 할 처지가 된 우리 유권자들은 향후 넉달여 동안 한층 심각한 선택의 고민에 휩싸이게 될 것 같다.

최근 들어 유력한 제3의 후보가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심사는 이른바 '반창비노'(反昌非盧)의 제3후보가 노선차이를 보이는 기존의 두 법통계승 희망자와는 또다른 노선과 정책차별화를 통해 제3의 길을 제시하느냐에 있다. 단순한 인물대결이나 소모적인 색깔논쟁, 비리의혹 캐기에만 주로 매달리던 지금까지의 부정적 대선 행태에서 벗어나길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가슴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엿보이는 게 각종 여론조사 결과다.

이.노 두 후보의 국민경선 확정 직후 오랜만에 건강한 정책대결과 정치개혁의 호기에 기대를 걸던 유권자들의 정치혐오증이 제3후보의 가세로 일부라도 해소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작은 안도의 한숨이 될 것이다.

김학순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