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 칼럼> 女宰相에 붙은 물음표

 
2002-07-15
장상 국무총리서리의 언행을 보면서 때묻은 기성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과 너무나 닮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욕하면서 닮는다는 속담처럼 행여 학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들의 행태를 속으로 욕했지만 상황이 비슷해지자 은연중에 배운 것을 그대로 따라 하지는 않았는지 부질없는 걱정도 해 보게 된다.우리네 정치인들은 대부분 자신과 관련된 비리나 의혹이 터져 나오면 일단 상대방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딱 잡아떼고 본다. 그 뒤에는 한두번 만난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발 물러선다. 돈을 받았을 경우 대가성없는 것이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둘러댄다. 그처럼 얼버무리지만 결과는 한결같이 비리나 유착관계로 매듭지어지는 수순을 밟는다.

큰 아들의 국적과 본인의 학력기재 문제가 불거진 뒤 장 총리서리가 대응하는 방법을 보면 이들과 흡사하다. 큰 아들의 병역문제가 거론되자 그는 맨 처음 "장남은 몸이 아파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해명했다. 그것으로 부족하자 나중에는 "미국 유학시절에 태어난 아들이 미국 국적을 자동으로 취득했다가 법무부의 이중국적 해소 종용에 따라 한국국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을 뒤집었다. 더욱 실망시킨 걸작은 그 다음 말이었다. "총리가 될 줄 알았으면 (아들의)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그의 큰 아들 미국국적에 관한 해명은 의문점이 한두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네살 때 이중국적을 피하라는 법무부의 종용이 있어 불가피하게 미국국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한국국적을 가질 생각과 의지가 있었다면 18살 이후 미국 국적을 포기하면 손쉽게 국적회복이 가능했다.

더구나 호적에는 한국 국적이 정리됐지만 주민등록서류에는 그대로 남아 있어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으며 지금까지 의료보험혜택도 받고 있다고 한다. 국민으로서의 의무는 회피하면서 혜택만 챙기려는 발상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큰 아들이 한국국적을 갖고 있었더라도 지병 때문에 군(軍)에 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만으로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 장 총리서리는 장남의 국적문제가 '옥에 티'라고 자평했으나 '티'에 불과한 사안으로 믿어줄 국민은 많지 않은 듯하다. 막중한 국무총리의 도덕성 지수와 국가관, 애국심에까지 의문부호를 찍게 만든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것은 사건 자체보다 말바꾸기와 거짓말 때문이었다.

학력기재에 따라 다니는 의혹만 해도 고의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전혀 다른 교육기관으로 기사화된 언론보도를 바로잡기보다 방치하거나 스스로 다르게 얘기한 경우도 있다. 총리서리 임명 후 불거진 혼선에 대해서는 대학의 비서가 번역을 잘못한 탓으로 돌렸지만 곧이곧대로 믿기엔 석연찮은 전례가 발견된다.

1996년 8월 이화여대 총장으로 임명된 뒤 한국일보에 실린 인터뷰를 보자. "제가 이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신학과에 편입했을 때 남편(연세대 교수)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신학과에 편입하여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예일대와 프린스턴대에서도 같이 공부했는데 세 학교에서 11년을 클라스 메이트로 지내다가 헤어지려니 너무 섭섭해서 결혼했어요(웃음)". 인터뷰 기사에 첨부된 학력란에도 '77년 프린스턴대 신학대학원 박사'라고 적혀 있다. 바로 전날 동아일보 인터뷰에 실린 학력 역시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돼 있다. 본인의 의지만 있었다면 오래전에 바로잡혔을 것이다.

이제 그는 국회의 인사청문회나 임명동의 절차와 상관없이 신뢰성에 치명상을 입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재.보궐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이 사상 최초의 여성총리라는 점과 여성표를 의식해 모양새만 갖춰 그의 총리직을 인준해 줄 지 알 수 없지만 국민에게 의무를 요구하고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하는 국정수행이 원만할지 의문이 든다. 그에게 뒤따르는 물음표는 여기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신뢰성은 공자(孔子)도 식량과 안보보다 우선순위에 놓을 만큼 국가적 중대사다. 장 총리서리 자신의 지혜로운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나 인준부결 사태가 온다면 국민들은 또하나의 비극을 본의 아니게 관람하는 셈이다.

김학순 /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