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2-24 |
출범을 하루 앞둔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참모진은 10년 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때와 닮은 점이 숱하다. 40대 중반에 대통령에 당선된 클린턴이 역사상 가장 젊은 백악관 참모진을 구축했듯이 노당선자도 파격적일 만큼 젊고 참신한 비서진용을 짰다. 특히 백악관 홍보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은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다. 각료는 경륜있는 인사들로 구성하는 대신 백악관과 청와대는 코드가 같은 친정체제로 꾸려 주요정책 입안과 추진에 중점을 두는 전략 역시 클린턴과 노당선자의 공통점에 속한다. 청와대 참모진의 개혁성과 참신성 측면에서 국민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크다.하지만 마냥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조심스런 눈길로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홍보팀의 경우 평가를 유보하거나 걱정하는 목소리들도 들린다. 새정부의 개혁성을 높이 사는 지지층은 향후 언론개혁정책에 의구심을 한 자락 깔고 있는 분위기다. 보수진영에서는 경험과 전문성까지 후한 점수를 보류한 상태다.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시험대에 오를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공식 출범도 하지 않은 팀에 대한 평가치고는 야박하고 협량한 느낌이 들지만 보좌진의 각오가 남달라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청와대의 새 홍보팀은 백악관의 홍보시스템을 본뜬 만큼 클린턴 행정부의 시행착오가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클린턴 대통령은 청와대의 홍보수석비서관에 해당하는 백악관 공보국장과 대변인에 나란히 서른한 살에 불과했던 조지 스테파노풀로스와 디 디 마이어스를 기용했다. 마이어스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최초 여성대변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두 사람이 대선 과정에서 공보팀으로 거뜬히 중책을 소화해 낸 데다 클린턴 스스로가 32세 때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가 됐던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 최강국을 움직이는 백악관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초기엔 주요 현안 브리핑을 정식 대변인인 마이어스를 제쳐 놓고 스테파노풀로스 공보국장이 떠맡는 일이 잦았다. 스테파노풀로스도 출범 후 6개월이 채 못돼 마크 기어런 비서실 차장에게 국장 자리를 내줘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클린턴은 당초 직제에도 없던 공보담당 고문 자리를 만들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시 백악관 공보국장을 지낸 베테랑 데이비드 거겐을 보강했다. 야당인 공화당 인물이었던 거겐까지 동원한 것은 지지도가 곤두박질치며 국정수행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자 대안으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마이어스 대변인은 좀 더 버텼으나 기자들의 질문에 헛다리를 짚기 일쑤였던 데다 권력 메커니즘에 대한 경험부족과 내부 비판세력의 등쌀을 끝내 견뎌내지 못했다. 그 자리에는 노련미를 자랑하던 마이클 매커리 국무부 대변인이 들어섰다. 촉망받던 마이어스를 끝으로 클린턴의 '무서운 30대 아이들'도 대부분 백악관을 떠나고 말았다. 노당선자의 청와대 홍보팀은 인생 연륜에서는 클린턴의 백악관 공보팀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을지 모르나 대통령과의 일체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참신한 여성 대변인이 당선자의 국정철학마저 미처 정리하지 못해 작은 해프닝을 일으킨 적이 있었고, 외신대변인 시스템에도 혼선을 빚어 궤도수정을 하는 불안감을 이미 노정시키기도 했다. 청와대를 온라인 매체는 물론 외신기자들에게까지 개방할 계획인 노당선자의 경우 홍보팀의 역할과 임무는 어느 때보다 비중이 높다. 더구나 노당선자는 국내외적으로 매우 민감한 현안들을 떠안고 출범한다. 과거에 비해 2배 가까운 인력을 홍보팀에 배치하고 기능을 강화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청와대 홍보팀에게는 고도의 정치감각과 국정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뒤따라야 한다. 대통령의 뜻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동물왕국 못지 않은 권력세계의 속성에도 적응할 줄 알아야 한다. 만에 하나 출범 초기 홍보팀의 시행착오가 초래되면 새정부로서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노당선자가 선호하는 국민과의 직접 대화방식도 취임 후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국정홍보에 벌써부터 예민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이 있겠지만 어렵지 않은 과제로 여길 경우 클린턴 처럼 큰 그림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학순 편집국 부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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