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7-04 |
노무현 대통령이 싫어하는, 아니 최소한 좋아하지 않는 말 가운데 하나인 '정치공학'에 얽힌 조그만 일화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있었다. 미국 남일리노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모교인 연세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주관중(朱冠中) 교수가 1960년대 후반 '정치공학'이라는 책을 냈다. 서점에 깔려있던 이 책은 어느 날 청와대 지시로 모두 회수되고 만다. 그 뒤 주교수는 대통령 정무비서관에 임명된다. 박전대통령이 능수능란한 정치공학(political manipulation)적 수완을 발휘하게 된 데는 주비서관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후일담이 전해 내려온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의미하는 그의 정치공학은 정치의 기능을 체계화하고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적 방법을 뜻하는 또 다른 정치공학(political engineering.political technology)과는 거리감이 있다. 그 옛날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나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같은 인물들은 가히 정치공학의 화신이라 불린다. 흥미진진한 삼국지에서도 중국 정치공학의 진수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독일의 히틀러 나치 체제나 옛 소련의 전체주의 체제도 철저한 정치공학을 통해 권력을 향유하고 휘둘렀음은 물론이다. 독재.전체주의 국가들은 체제 유지를 위해 온갖 정치공학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노대통령의 정치공학 비판은 이런 음습한 이미지가 짙게 풍기는 것에서 연유한 것 같다. 노대통령이, 탄핵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 직후 연세대에서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마련한 자리에서 전통적인 정치공학 접근법을 타박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애독했다는 '열국지'를 예로 들면서 "요즘 정치공학 책을 보면 국민을 속이고 자극하는 기술이 수없이 나오는데 그것을 지도자의 제일 조건으로 써놓은 책을 보면 답답하다"고 술회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 대표도 정치공학과의 결별을 노대통령 시대의 상징이라고 결연하게 얘기한 적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정치공학을 도입하고,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고 분배하며 이기는 게임에만 몰두해왔던 과거와의 결별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어떤 지도자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일일 것입니다." 이처럼 부정적 정치공학과의 이별을 선언했던 노대통령이 실제로는 취임 이후 줄곧 그 마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노대통령에게 정치는 실종되고 정치공학만 남았다는 좀 과한 비판까지 가세한 때도 있었다. 요즘 얼마 동안은 부쩍 더해졌다. 영남 낙선자들의 장관, 공기업 사장 기용 등 일련의 인사가 그렇고 각종 정부정책에도 정치공학적 테크닉이 지나치게 춤을 춘다. 윤광웅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부결처리 과정 역시 예외는 아니다. 타고난 게임 정치의 단맛을 은근히 즐기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대표적인 정치공학 성공작인 탄핵정국 돌파 과정과 17대 총선에서 얻은 자신감을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도 적용하려는 계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기실 정치인에게 정치공학은 마약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같은 정치공학이 한 번은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두 번은 통하기 어렵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각각 20%대와 10%대로 다시 내려앉은 것에는 정치공학에 대한 염증도 함유돼 있다. 다윗 왕이나 인도 마하트마 간디처럼 정치공학의 묘용(妙用)을 통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승화시킨 경우는 모범사례다. 이들의 통찰력 있는 정치공학은 단순히 술수나 책략으로만 발휘되지 않고 인격의 깊이와 정치적 역량이 성숙의 경지에서 어우러져 나온 것이다. 정답은 노대통령 스스로의 다짐대로 정치공학을 내려놓고 역사의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표 계산에 매몰된 정치에 나라의 미래가 온전히 담길 리 없다. 국민들은 이제 정치공학의 달인들에게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노대통령이다. 유혹을 과감히 떨쳐 버릴 때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야당과의 일시적 게임 법칙이 아닌 국민을 향한 감동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김학순 미디어칸 대표 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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