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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김학순 칼럼] '웰컴투 동막골'의 정치사회학

2005-09-05
'다 보고 나서 모두들 느낀 생각은 이건 반미영화였구나였다' '교묘한 이념영화다' '네거티브 전략의 친북영화다' '프로파간다의 정의를 본 듯하다' '휴머니즘으로 포장한 민족주의 정서의 상업영화' '젊은 세대들이 자기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을까'.

6.25전쟁을 소재로 한 대박영화 '웰컴투 동막골'은 인기몰이만큼이나 이념논란도 뜨겁고 격하다. 쟁론의 장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음은 물론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나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블록버스터와는 또다른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특히 젊은 세대에 비해 반공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중년 이상의 세대들 가운데 혼란을 호소하거나 뜨악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더 과격한 어조를 띤 평가도 적지 않다. '이승복 어린이가 통곡할 영화다' '판타지를 가장한 고도의 빨갱이 영화' '육탄 10용사들이 보면 오버이트할 영화' '국군 비하한 쓰레기 영화' '한국전쟁을 왜곡해 돈벌이를 하거나 정치권력에 아부하고 싶어 만든 영화일 뿐'.

조금 감정을 절제한 논평은 이런 정도다. '영화를 보고 나서 순수하게 느낀 것은 이래도 상관없나라는 의문점이었다' '잘 만들었지만 그냥 영화로 보기는 좀 위험하기도 하고…'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는 없는 영화'.

염려가 한결 앞서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대뜸 남측의 '정신적 무장해제'를 떠올린다. 우리 군 고위간부들의 우려는 동막골 증후군이 신세대 장병들에게 미칠 부정적 요소에 초점이 모인다. 영화의 예술성이나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평점을 논외로 한다면 환상의 마을에서 펼쳐지는 따뜻한 휴머니즘은 미군이 '악의 축'으로 묘사되는 막판 전개과정으로 인해 시각이 교차된다.

실제 가치중립적으로 보더라도 '웰컴투 동막골'은 '1953년 체제'가 '2000년 체제'로 확연하게 전환되는 촉매가 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적어도 국민정서로는 한.미공조 중심의 휴전체제가 남북공조 중심의 6.15 남북공동선언 체제로의 변환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함의가 있다. 1천만 관객이 이 영화를 볼 것으로 추산하면 정치.사회적 파장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하지만 영화에 지나친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씌우거나 반드시 반미.친북정서로만 전개된다는 주장은 무리다. 북한 지도층에게 던지는 경고 메시지도 군데군데 등장한다. 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뼈아픈 장면은 인민군 병사가 촌장의 지도력을 묻는 대목이다. 어떻게 큰소리 한번 치지 않고 마을 사람을 잘 다스리느냐는 물음에 촌장은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해결한다. "영도력의 비결? 글쎄… 머를 마이 멕에이지. 뭐" 배불리 먹게 해주면 간단히 해결된다는 경상도 사투리다. 영화에서 동막골은 단순한 '공동경비구역'이 아닌,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하는 '공동수호구역'이다.

게다가 북한 당국자들의 입장에서는 전쟁 책임론에 치명타를 입는다. 인민군 장교의 입으로 6.25전쟁의 시작은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라는 것을 실토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킨 게 진짜 누구냐는 인민군 병사의 궁금증에 인민군 장교는 "우리가 먼저 쳐들어온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외국언론의 반응도 꽤나 괜찮은 걸 보면 그리 폄훼하지 않아도 될 성싶다. 남북 화해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보여주는 대표 영화의 하나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전쟁이나 남북관계를 소재로 하는 우리 영화가 날이 갈수록 '화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쉬리'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 동막골'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금기가 하나둘씩 깨지는 듯하다. 북측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와 더불어 영화 속의 남북화합 무대인 '웰컴투 동막골'이 금기깨기의 주마가편이 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남북관계에 관한 한 금기는 많이, 그리고 빨리 깨질수록 좋다. 영화 속의 남북화합은 현실 접목에도 응원이 될 것이다.

김학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