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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김학순 칼럼> '밑빠진독' 賞과 황금양털賞

2005-10-05
뉴욕타임스 최고의 아시아통 기자로 퓰리처상 수상자이기도 한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의 눈에는 일본에서 목도한 이해할 수 없는 정책들이 인상깊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일본처럼 그럴 듯한 나라가 어마어마한 액수의 예산을 불합리하게 쓴 사례는 숱하지만 그 가운데 두 가지 경우에 더욱 놀랐다.

1천3백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고작 350명이 살고 있는 조용한 작은 섬 이카라지마를 육지도 아닌 이웃 섬과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한 것이 그 중 하나다. 15분이면 어렵잖게 오갈 수 있는 페리가 있었지만 정부는 이카라지마 사람들의 생활을 향상시킨다는 명분 아래 주민 1인당 약 3억7천만원에 해당하는 돈을, 없어도 그리 불편하지 않은 용도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 정도의 거액이라면 차라리 다른 방법으로 주민들을 돕거나 다른 곳의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명분도 좋을 듯한데도 말이다.

다른 하나는 후지산 기슭의 이치노세타카하시라는 작은 시골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일이다. 학생이라곤 단 한 명뿐인 데다 앞으로도 신입생이 있으리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이 학교의 교장실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휴식시간을 알리는 번쩍거리는 종과 확성기 시스템까지 새로 말끔하게 갖춰 놓았다. 이방인의 눈에는 유일한 학생인 일곱살짜리 사이토 다이키를 창문 너머로 소리쳐 불러들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또 다른 학교가 있기는 하지만, 행정구역이 달라 사이토를 그곳으로 보낸다는 것은 일본인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서 중앙정부는 버려진 학교 건물을 새로 단장하는 데 1억여원을 들였고, 사이토를 가르칠 1학년 담임선생과 교장을 모셔왔다. 사이토를 위해 학교가 운영되는 데는 연간 2억원의 돈이 더 든다. 궁금하기 짝이 없는 미국 언론인의 질문에 교장의 답변은 당연히 일본답다. "만약 우리가 효율성만 따진다면 세상은 감성이 메마른 삭막한 곳이 돼 버리겠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크리스토프의 눈에는 비용대비 효과에 무관심하고 불합리한 일본인들의 심리구조가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한국이 일본 못지않다는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철인 데다 내년 정부 예산안까지 발표된 터여서 연례행사인 혈세낭비 논란과 불어난 세금 시비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걸 보면 일본만 동정어린 눈으로 볼 일도 아니다.

나라 빚이 천문학적 단위로 늘어나도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하루 종일 차가 몇 대 지나다니지 않는 시골에 수십.수백억원이 드는 포장도로를 만들어 실력자임을 과시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목에 여전히 힘이 솟구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시내가 없어도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하는 게 정치인이라는 전설 같은 얘기도 있으나, 없어도 별 어려움이 없는 다리나 도로를 건설하겠다는 본뜻은 다른 콩밭에 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뿐인가. 중앙정부 청사 못지않게 쓸데 없이 크거나 호화로운 지방자치단체 청사가 셀 수 없이 적발되는 게 우리의 씁쓸한 현주소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해마다 갈아치우는 처사에 대한 지적은 이제 소 귀에 경읽기다.

감사원이 나서고, 올곧은 국회의원과 공무원 노조가 따지며, '함께하는 시민행동' 같은 시민단체가 5년째 매월 '밑빠진독'상을 주면서 낯뜨겁게 해도 그들의 낯은 외려 두꺼워지는 느낌이다. 불요불급한 예산낭비 감시용인 황금양털상(Golden Fleece Award)과 자신의 지역구에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특혜성 예산에 대한 감시용인 미국의 꿀꿀이상(Porker of the Month)처럼 세월의 무게를 더하면 좀 나아질까.

세금의 과다를 따지는 것 못지않게 피같은 나라 돈을 함부로 쓰는 것을 감시.감독하는 게 긴요한 데도 우리는 아직 선진국만큼 야멸차지 못한 것 같다. 공적인 견제장치만으론 역부족이다. 시민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시간과 전문성의 한계가 있는 만큼 끝없이 표로 심판하면서 시민단체의 감시를 지원.격려하는 것이 그나마 지름길인 듯하다.

김학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