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26 |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흥미롭게 묘사한 촌평을 보면 단편적이고 선입견이 섞인 듯하지만 입가에 웃음이 배어나올 때가 많다. 그런 얘기 가운데 한 방에 둘이 같이 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엮은 것이 있다. "미국인은 상대방을 맞고소하고, 중국 사람은 장사를 트기 위해 흥정을 벌이며, 일본인은 의례적인 인사만 나눈다. 싱가포르 사람은 학교성적표를 보자고 하며, 대만인은 함께 해외이민 신청을 한다. 인도인은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미국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스웨덴 사람은 섹스에 열중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싸운다'가 정답이다. 이 답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게 아니다. 저명한 외국 언론인의 눈에 비친 그대로다. 우리보다 후진국에 속하는 캄보디아 사람의 통찰도 어쩐지 짜맞춘 듯이 똑같다. 명문 프놈펜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인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23살 난 여성의 이야기는 이렇다. "한국 남자들은 매일 싸워요. 그렇지 않으면 하루를 마무리하지 못하는 듯하죠." '한국인들은 싸움이 붙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다른 외국 관찰자의 말에도 무릎을 치게 하는 날카로움이 엿보인다. 이들과 또 다른 제3의 시각은 어떨까. 중국의 조선족 3세 지식인인 찐원쉐(한국명 김문학)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사람들은 똑똑이들이어서 혼자 있을 때는 곧잘 개인 파워를 발휘하지만 셋만 모이면 저 잘났다며 결속은커녕 싸움을 벌이기 십상이다." 한.중.일 3국의 말과 문화를 두루 잘 알고 책까지 쓴 그이기에 매도하기도 어렵다. 나라 안에서는 "싸워도 될 일을 말로 하고 마느냐"며 부추기는 우스개 구경꾼이 있을 정도다. 어떤 호사가는 '한국인과 싸움'이라는 학술논문도 씀직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쯤 되면 조선시대의 당쟁이 식민사관 때문에 지나치게 왜곡됐다는 주장이 약간은 머쓱해지지 않을까 두렵다. 이러니 우리네 정치판의 지겨운 싸움닭 구경하기는 하루가 멀다. 엊그제만 해도 국회에선 한 야당 중진의원과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가 대정부질문에서 닭싸움하듯 아름답지 못한 광경을 연출했다. 지난해도 이미 한차례 점잖지 못한 말의 결투를 벌인 이들은 또다시 대정부 질의.응답의 본질적인 문제보다 독설 경쟁으로 일관했다. 나라를 어깨에 짊어진 지도자들로 대접해 주는 것은 고사하고, 참고 들어주기에도 시간이 아까운 풍경화만 보여줬다. 이 경우엔 가급적 피해야 할 양비론을 불가피하게 들이댈 수밖에 없지만 원인 제공은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이 먼저 한 게 분명하다. 그가 작년의 울분을 앙갚음하겠다고 작심하고 나온 듯하나 단순히 이해득실만 따져도 복수를 하기는커녕 도리어 당한 느낌까지 준다. 당 지도부가 다음날까지 흥분한 게 그런 방증이다. 참여정부 들어 싸움닭 정치는 정치인들끼리에 그치지 않고 전선이 행정부와 청와대까지 전염병처럼 확산됐다. 의원 겸직이거나 정치인 출신인 총리와 장관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난날엔 자기 목소리도 없었던 청와대 비서관들까지 진흙탕 대열에 끼어 돌연변이로 나타났다. 여야 대변인들의 신사협정이 사흘을 넘기기 어려운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싸움닭 정치가 염증을 낳으면서도 기승을 부리는 것은 국민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상대를 물고 뜯어 유혈이 낭자한 핏빛 투혼을 보여줘야 '존재의 이유'를 인정해 주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싸움닭 정치는 계속될 것이다. 싸움닭으로 이름난 여야의 대표선수들이 자제하기는커녕 즐기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80년대 뉴욕 타임스는 한국 정치를 두고 상대방이 쓰러져야 싸움을 그만두는 스타일이라고 은근히 꼬집었던 적이 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만큼 세월의 무게가 달라졌으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이던 그 때보다 외려 진도가 더 나간 게 싸움닭 정치다. 정치개혁은 싸움닭 정치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족적을 남길 만하다. 게다가 '큰 사람과 싸워야 자신도 큰다'는 정치 공식이 오류로 변하지 않는 한 싸움닭 정치는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다. 언론의 숙제도 싸움닭 정치의 중계방송 중단 여부에 있다.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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