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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김학순 칼럼> 강대국 각축장, 東亞 정상회의

2005-12-14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1984년 10월22일 중앙고문위원회 제3차 회의에서 의미심장한 연설을 했다.

"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기자들이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에 대해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댜오위다오는 일본에서 센카쿠(尖閣)열도라고 불러 이름도 우리와 달라 분쟁 중인 현안이다. 이 문제는 그대로 놓아 두면 다음 세대에 가서 더 현명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나의 머릿속에서는 두 나라의 주권 다툼과 관계없이 공동개발은 가능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도서 주변의 해저 석유 등을 공동 개발해 합작 경영하고 공동이익을 얻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싸울 필요도 없고 많은 담판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화제는 또 다른 분쟁지역으로 옮겨 갔다. "난사(南沙)군도는 역대로 세계지도 상에 중국령으로 되어 있어 중국에 속한 곳이다. 현재는 대만이 섬 하나를 차지하고 있으며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가 각각 몇 개의 섬들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무력을 사용하여 모두 회수하는 방법과 주권문제를 일단 보류해 두고 공동 개발하는 방법이 있다. 후자의 방법은 다년간 누적돼 온 문제를 해소시킬 수 있다. 우리 중국인은 평화적인 것을 주장하며 분쟁도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일국양제(一國兩制)'와 '공동개발'이 답이다. 나와 이야기하던 외빈들은 모두 이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로서 재미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주변국가들을 자신의 세력 범위 안에 묶어두고 통제하던, 수천년 동안의 기본원칙이었던 '기미정책(▦政策)'을 접어두고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를 외교정책으로 삼자고 설파하던 때의 일이다.

그러던 중국의 외교노선은 2002년 11월 후진타오(胡錦濤)를 중심으로 한 4세대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어느덧 새 옷을 갈아입는다. 이른바 '화평굴기'(和平▦起.평화롭게 우뚝 일어선다)와 '유소작위'(有所作爲.적극 개입해 뜻을 관철시킨다)로 이어지는 대외전략이 그것이다. "중국 외교는 최소한 100년 동안은 도광양회 전략이 더 필요하다"는 우젠민(吳建民) 외교학원 원장의 주문은 젊고 패기만만한 지도자들에겐 어르신네의 괜한 걱정에 불과하다.

그러잖아도 '중국위협론'을 외치는 미국과 일본이 본격적으로 견제구를 던지기 시작하면서 동아시아는 다시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파열음이 들릴 때도 잦아졌다.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고 있는 제1차 동아시아정상회의는 이를 방증한다.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주도권 다툼은 한치의 양보도 보이지 않을 만큼 치열하다. 날이 갈수록 우경화하는 일본이 미국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사실상 대리전을 펼치고 있다. 아세안(ASEAN) 여러 나라들의 생각도 서로 달라 복잡다단하게 얽히고 설켜가는 느낌을 준다.

아세안 회원국에 대한 영향력을 드높여 미국의 참여를 원천봉쇄하려는 중국. 중국의 속셈을 읽고 인도, 호주, 뉴질랜드가 참가하도록 일을 도모한 일본. 일본의 배후에서 중국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미국. 한 발이라도 문 안에 걸쳐 놓고 싶은 러시아.

고래들 사이에서 복잡하게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한국의 머릿속은 터져나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동아시아만의 공동체 결성과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하는 미국과 가속도를 내려는 중국을 모두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우리의 처지다. 사실 동아시아정상회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 제안한 것이어서 한국도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고 싶을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뜻깊은 이 회의에서 협력하기 쉬운 일부터 시작하자는 실천적인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로서는 그에 못지 않게 '동아시아공동체' 결성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어느 때보다 지혜로운 전략이 요구된다. 6자회담을 비롯해 북한과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주변 강대국과 한층 까다로운 방정식을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가 취약점으로 지적되는 참여정부의 짐은 더욱 무겁게 됐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