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02-07 18:03:58
한국 사회의 이념·정책적 대안모색이 독창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유럽에선 전통적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제3의 길’이 등장하자 반론과 더불어 이른바 ‘2와2분의1의 길’ 같은 또다른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영국에서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제3의 길’을 이론화하고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가 ‘신좌파노선’ 정책으로 채택하기 이르렀다.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새로운 중도’를 들고 나왔던 독일 등 유럽 여러나라 정권들도 유사한 길을 걸었다.
그러자 프랑스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알랭 투렌은 ‘제3의 길’이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통박했다. 투렌은 ‘2와2분의1의 길’이라는 특이한 대안을 내놓았다. 투렌이 내세운 ‘2와2분의1의 길’은 새로운 사회운동과 사회연대적 정책의 복원을 핵심 기조로 삼는다. 그는 ‘제3의 길’을 중도우파로 깎아 내리며 ‘2와2분의1의 길’이야말로 생산과 분배를 동시에 보듬는 진정한 중도좌파라고 외친다. 좌표로 말하자면 ‘낡은 사회민주주의’와 ‘제3의 길’ 사이에 ‘2와2분의1의 길’이라는 이상적인 노선이 존재한다는 견해다. 중도좌파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같은 이도 ‘제3의 길은 없다’며 기든스와 블레어 정부를 폄훼하는 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지속가능한 진보’ 차명깃발-
새로운 진보를 표방하는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은 기존 진보세력과 차별을 꾀한다는 점에선 ‘한국형 제3의 길’로 불린다. ‘뉴 레프트’라는 낡은 용어에는 반감을 드러낸다. 서구에서 1960년대부터 있어 왔던 ‘새 좌파라는 낡은 어휘’가 마치 형용모순처럼 마뜩찮아서다. 중도좌파 성향의 학자들이 주축이 된 ‘좋은정책포럼’은 이념중심이 아닌 정책중심의 연구를 앞세운다.
이들이 내건 ‘지속가능한 진보’도 깃발 자체부터 신선한 건 아니다. 차명계좌다. 이미 아일랜드에서는 노·사·정 간의 시기별 협약에 따라 2003년부터 추진 중인 정책 프로그램 이름으로 ‘지속가능한 진보’란 공식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요즘 진보진영의 범세계적인 화두의 하나가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축약할 수 있는 것과 맥이 닿는 셈이다. 사실 ‘지속가능한’이란 접두어 역시 마치 패션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융통성을 지니면서도 어쩐지 매력이 있어 보이는’ 환경운동 용어가 개발된 이래 너도나도 무임승차하고 있는 분위기다.
또다른 진보단체인 노동시민운동가 중심의 ‘새희망포럼’도 현실적 대안 마련과 실생활 속의 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도 ‘이념보다 정책으로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좋은정책포럼’과 그리 다르지 않다. 때마침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여당 당의장 후보도 ‘따뜻한 시장경제를 위한 제3의 길’을 웅변한다.
새로운 진보 단체가 하나둘 뜨기 시작하자 “좌파가 맞기는 맞나?”라는 물음표를 새긴 눈초리도 없지 않다. 보수의 아킬레스건은 부패이고 진보의 취약점은 분파주의라는 통설 때문만이 아니다. ‘제대로 할까’라는 기우 섞인 걱정 탓이리라. 소위 ‘올드 라이트’와의 차별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일부 ‘뉴 라이트’보다는 사시(斜視)가 덜 해 보인다. ‘뉴 라이트’ 진영이 새로운 진보단체의 출현에 더욱 반색하는 모습이 기이하긴 하다. 경쟁적 공존관계로 인한 홍보 효과가 만만찮아서지만 말이다.
-이념없는 노선은 장수 어려워-
진보 진영에도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수혈돼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기도 한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생태주의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지적했듯이 행복하지 않다면 진보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노선이든 정책만으론 오래 홀로서기가 쉽지 않다. 정책만으로도 짧은 기간은 자생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튼실한 이론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수하기 힘들 것이다. ‘지속가능한 진보’가 그만큼 지속하기 어렵다는 뜻이겠다. 그래서 세상에는 쉬운 게 없다고 하나 보다.
〈김학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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