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01-10 18:12:33
미하엘 가이어 주한 독일대사의 충고는 차원과 무게가 달라 보인다. “독일은 주변국가들이나 북미 대륙의 파트너 국가들과도 긴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지금 한국은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마저 악화되어 국제무대에 홀로 서 있는 것 같다. 한국도 통일을 기원하고 있지만 관련국들과의 관계는 독일처럼 공고하지 못하다.” 한 조찬 모임에 손님으로 초청된 가이어 대사가 이처럼 주저없이 쓴소리를 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외교관들은 주재국에 대한 언급이나 충고에 극히 신중하다는 점으로 미루어보면 의외였다. 게다가 독일이 통일을 먼저 이룬 한국의 모델국가라는 점에서 이 발언의 주목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보수 언론과 야당이 “그것 봐라”며 반색을 한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여권 내부 인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쉬 지워지지 않는다.
-열강들과 균형외교 보좌를-
바로 그 무렵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라크 전쟁에 군대를 파견한 동맹국들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한국만 빼버린 일이 겹쳐져 상황이 더욱 미묘했다. 다소 차원이 다르지만 새해 벽두 중국 국무원 직속 사회과학연구원이 발표한 주요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세계 9위로 나타난 한국의 취약점 가운데 하나도 외교력이었다.
나라 밖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친미 일변도인 보수 언론이나 야당의 끈질긴 비판은 일단 제쳐두자. 역대 대통령 중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식견이 탁월한 편에 속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 속에는 강고한 뼈가 들어 있다. “다음 대통령으로는 평화 정착과 한·미·일관계 등 3중 외교를 잘 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현직 대통령과 정부가 가장 모자라는 부분을 간접화법으로 에두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난해 말 “외교 문제는 기대를 초과 달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평은 스스로 접두어처럼 붙였듯 ‘자화자찬’이다.
이런 비판론의 중심에 외교통상부가 서 있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신 대통령과 더불어 대개 남북관계 전문가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상황은 새해라고 그리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가 이젠 한결 중요한 자리를 맡은 데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하게 됐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외교 불안은 단지 미국과 거리두기라는 자주노선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외교에는 밀월과 갈등의 변주곡이 연주되게 마련이겠으나 어렵사리 얻은 점수를 너무 쉽게 잃어버리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엄존한다. 벌어 놓은 게 많지 않으면서도 그나마 경박부허(輕薄浮虛)한 언술로 실점하고 마는 행태가 한두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게다가 팀워크가 맞지 않아 제때를 찾지 못하는 아마추어 발언이 여기에 분칠을 하는 일이 잦다.
-외교통상부 목소리 너무 낮아-
남북 화해와 협력을 중시하고 자주 외교를 펴는 것은 권면해야 옳다. 다만 열강들로부터 고립되지 않는 균형외교가 뒷받침돼야 한다. 폴 브래큰 예일대 교수의 지적처럼 ‘라팔로 전략의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삼음직하다. 1920년대 프랑스, 영국 등 강대국들에 에워싸여 있던 독일이 열강의 반목과 경쟁을 이용하려다 기회주의자로 비쳐 고립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러자 독일은 다시 러시아와 ‘라팔로 조약’을 맺었고, 그 결과 2차 세계대전을 낳는 외교적 오류를 저질렀다. 넓고도 긴 시야가 아쉬운 까닭을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정부의 외교안보팀에서 외교통상부의 목소리가 너무 낮게 들리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숙제다. 국제무대에서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대한민국에서 외교부의 위상이 이처럼 낮은 것은 길조(吉兆)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에곤 바르’격인 이종석 장관 내정자의 어깨가 더 가벼워지면 좋을 듯하다.
〈김학순/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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