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05-02 18:08:17
그러자 마부도 함께 나서서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말을 잘 지키지 못해서 생긴 일이니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그래도 자공이 가는 것이 좋겠다.” 공자의 말에 자공이 휘파람을 불며 농부에게 갔다. 하지만 자공이 손이 닳도록 빌고 설득해도 농부는 말을 돌려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농부의 손에 잡혀 있는 말고삐를 강제로 빼앗아 올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공은 맥이 빠져 빈 손으로 되돌아왔다.
공자가 이번에는 마부를 내보냈다. 마부가 웃으며 다가가 농부에게 말했다. “당신이나 나나 다 같은 농부가 아니오. 내가 깜빡 조는 사이에 아무 것도 모르는 짐승이 밭에 들어가 저지른 일이니 한번만 용서하시구려. 따지고 보면 이 밭 곡식이 당신네 것인지 우리 것인지 말이 어떻게 분별하겠소.” 마부의 말을 듣고 나서 밭주인은 허허 웃으며 말을 되돌려 주었다.
-국방부와 주민 평행선 주장-
이 일화는 ‘설득 심리학’ 교과서에 나올 법한 실례다. 선비인 자공보다 배우지 못한 마부가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유유상종의 심리가 작용한 셈이다. 자공이 마부와 똑같은 말을 해도 농부는 설득되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공자는 왜 처음부터 마부를 보내지 않고 자공을 보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공자가 마부를 먼저 보내면 자공은 속으로 불만을 품었을 것이다. 그 정도 일쯤은 자기도 어렵잖게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서운한 감정을 가질 게 분명하다. 공자는 자공이 실패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상대에 따라 사람마다 역할이 따로 있다는 점도 일깨웠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둘러싼 국방부와 주민들간의 첨예한 갈등을 보면서 ‘공자와 마부’의 예화가 문득 떠오른 것은 설득하는 일에서 마음과 방법의 중요성 때문이다. 말이 망쳐놓은 밭과 미군기지 이전은 사안의 차원이 다를 수 있지만 갈등을 푸는 접근 자세는 공자의 지혜를 빌려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바로 마음을 사는 법이다.
국방부와 주민들의 주장은 접점을 찾기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군기지 이전은 한·미간의 합의사항인 중요 외교문제”라는 국방부와 “보상문제가 아니라 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이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주장 자체가 우선 평행선이다. 게다가 시민단체가 가세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풀기 힘든 난제임에 틀림없다.
지난 2년여간 대화다운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해 상호불신이 쌓인 탓도 적지 않다. 그동안 수많은 몸싸움까지 벌어져 감정의 앙금은 쌓일 대로 쌓였다. 국방부가 뒤늦게나마 대화로 해결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엊그제는 급기야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대책회의까지 열었지만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오는 7일까지로 시한을 못박아놓고 대화를 시작해 국방부의 의도가 ‘명분 쌓기’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도 장애물이다.
갈등해결에서는 진정성이 최대 관건이다. 의사소통은 단어와 문장이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최선의 방략이다. 국군기무사령부가 경복궁옆 청사를 과천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추진하면서 보여준 성공담은 눈여겨봄직하다. 공공갈등 해결 우수사례의 하나로 꼽힌다는 기무사 이전전략도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적 접근’이다. 추진단장이 아예 이전지로 집을 옮겨살면서 주민 설득에 지극정성으로 나섰던 얘기는 뭉클하다.
-진정성 담긴 설득 있었나-
평택 미군기지 이전도 처음부터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국방부 당국자들로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설득했으나 생각의 격차가 워낙 컸다고 하겠지만. 설득의 기본정신은 일방 소통이 아닌 쌍방 커뮤니케이션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읍한다지 않는가. 눈물샘을 자극할 만큼 진지하게 대화한다면 설득이 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대화 아닌 물리력은 파국을 부른다.
〈김학순 논설실장〉
'세상톺아보기-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학순 칼럼] 北 미사일과 ‘죄수의 딜레마’ (0) | 2006.06.27 |
---|---|
[김학순 칼럼] 투표일 아침의 단상 (0) | 2006.05.30 |
[김학순칼럼] 정주영과 신문대학 (0) | 2006.04.04 |
[김학순 칼럼]‘제3의 길’은 대안인가 (0) | 2006.02.07 |
[김학순 칼럼]이종석 외교안보팀의 숙제 (0) | 2006.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