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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김학순 칼럼] 北 미사일과 ‘죄수의 딜레마’

입력 : 2006-06-27 18:16:59

남북한관계나 북·미관계에서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이론이 곧잘 부상한다. 주로 북한의 전략적 국면전환 카드로 시작되는 게임에서 미국이나 남한이 약속위반에 대한 ‘되갚기’ 여부를 고민해야할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미국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이론화한 ‘죄수의 딜레마’는 간결하게 풀이하면 이렇다. 범죄를 함께 저지른 두 사람이 경찰에 체포된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에 갇혀 사전에 입을 맞출 수 없다. 경찰은 두 혐의자에게 각각 이런 제의를 한다. 먼저 공범을 배신하고 자백을 하는 사람은 바로 풀려나겠지만 상대방은 15년 징역형을 받는다. 그렇지 않고 두 명 다 자백하면 나란히 10년 형을 선고받게 될 것이다. 만약 둘 다 자백을 거부하면 불법무기 소지만 문제가 되어 1년 형만 받게 된다.

두 명의 공범자는 형기를 마친 후 다음 번 범행을 모의하다 붙잡혀 다시 똑같은 상황에 처하곤 한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가 컴퓨터를 이용해 실험했을 때 이 경우 가상의 죄수들은 ‘네가 나에게 한 대로 나도 너에게 똑같이 한다’는 전략을 쓴다. 공범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자백을 거부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다. 반대로 공범자가 한번 배신하면 다음 번에는 공범자를 배신했다. 공범자가 다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택하면 자신도 그렇게 했다. 이처럼 행동하면 배신당하지 않고 협력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앙갚음, 그 끝없는 악순환-

이런 전략의 단점은 무자비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한번 배신하면 ‘네가 나에게 한 대로…’에 따라 공조체제는 끝장이 나고 만다. 국제정치에서 가장 비극적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 사례의 하나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관계다.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서로 협력할 용의가 있었다. 그래서 두 나라의 지도자들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시 팔레스타인에 의한 테러사태가 발생하자 이스라엘은 앙갚음을 했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폭력의 불씨가 되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진다. 중동지역에서 현재진행형인 이런 현상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론으로 설명된다. 냉전시절 미국과 소련도 흡사한 진퇴양난에 처해 있을 때가 많았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당사자들 가운데 상대방의 추한 특성들을 이따금 감수한 사람들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되갚기 법칙’(tit for tat rule)을 엄격하게 따랐던 사람들보다 감옥살이를 적게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카를 지그문트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험한 결과 나타난 흥미로운 현상의 하나다.

핵문제가 풀리지 않은 와중에 터진 북한과 미국의 미사일 게임도 ‘죄수의 딜레마’ 이론이 적용될 수 있다. 양측은 이미 뿌리깊은 상호불신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도 미국이 되갚기 전략을 동원하면 손쉽겠지만 끝없는 복수의 악순환만 되풀이될 뿐 근원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미국 조야 일각에서 외교적 해법을 역설하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 배경에 깔려 있다.

강경파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협박 외교를 벌이고 있는 마당에 하염없는 대북 유화론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득세한다. 상대방이 불신과 이기주의를 고집할 때는 아무리 선의의 행동을 취하더라도 일방적인 피해만 보게 된다는 논리다. 상호주의가 아닌 햇볕 정책이 실패하기 쉽다는 견해도 여기에 동원된다. 지나친 유화정책은 ‘죄수의 딜레마’이론에 어긋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세번에 한번은 용서하라-

그렇지만 가장 좋은 전략은 상대의 속임은 바로 응징하되, 실수를 가혹하게 응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세번에 한번 꼴로 용서하는 것이다. 현명하고 성공한 지도자들은 대체로 이런 전략을 따랐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협력과 신뢰가 중요한 넌제로섬게임을 제로섬게임보다 훨씬 더 선호한다. 결혼생활이 두 사람의 배우자가 어느 정도 양보할 때만 유지되는 것이나 노조와 사용자의 상생관계 역시 같은 이치다.

북한이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것은 단기적인 게임에서 이익을 얻을지 모르지만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다 신뢰를 잃는 것은 궁극적으로 득될 게 없다는 사실이다. ‘죄수의 딜레마’ 이론도 이를 늘 실증하고 있다.

〈김학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