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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석양 음악

입력 : 2008-05-02 17:51:51수정 : 2008-05-02 17:51:55

석양이 서쪽 하늘 아래로 뉘엿뉘엿 넘어가려는 순간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이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한없이 푸른 창공엔 희디흰 구름이 솜털처럼 떠다닌다. 광활하게 펼쳐진 대초원 한 가운데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노니는 야생 동물을 보면 평화롭기 그지없다.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서정적으로 그린 웅장한 대작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이런 장면을 보면 누구나 목가적인 사랑이 흐르는 아프리카 생활을 꿈꿔 볼 것이다. 아이작(메릴 스트리프)과 데니스(로버트 레드퍼드)처럼 여유로이 거니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모차르트가 유일하게 남긴 이 클라리넷 협주곡은 영화 속에서 자연의 장엄미와 유유자적한 정감을 한껏 부풀려 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명화 ‘석양의 무법자’도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애상적인 분위기를 북돋는다. 베두인족들이 낙타를 타고 끝없는 모래 언덕을 넘어 석양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듣는 음악은 또 어떤가.

자연을 닮아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쿠바인들이 석양 무렵 끼리끼리 모여 ‘관타나메라’를 부르고 춤추는 데서는 정열과 신명이 절로 흘러넘친다. 황혼 무렵 노을 지는 지평선 위를 나는 새떼를 보며 서유석의 ‘긴 다리 위에 석양이 걸릴 때면’을 들으면 어느새 깊은 상념에 젖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확실히 태양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노을이 질 무렵이다. 석양은 온 누리를 신비롭고 붉은 빛으로 물들여 현묘한 아우라를 창조한다. 저녁 노을은 언제나 자연의 품속에 날아드는 희열을 안겨준다. 석양에 듣는 음악은 시인의 마음이 부럽잖게 만든다.

석양과 음악과 호수가 어우러지면 어떨까. 고양시가 일산 호수공원에서 오늘부터 10월까지 매달 셋째 토요일 수준 있는 석양 음악축제를 열기로 했다고 한다. 그것도 무료 야외공연이다. 작년에 열린 몇 차례의 음악회가 예상을 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뜻있는 음악인들과 강현석 시장이 의기투합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내년 이후에도 이를 이어가며 호수공원을 음악공연 마당으로 키워나가겠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문화와 낭만, 흥으로 충만한 시민, 안목과 격조 있는 행정은 생각만 해도 정겹고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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