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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비옥한 초승달지대

입력 : 2008-04-18 17:40:26수정 : 2008-04-18 17:40:32

이슬람 국가에서는 초승달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마호메트(무함마드)가 알라 신으로부터 최초의 계시를 받을 때 초승달과 샛별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초승달은 알라 신의 진리가 인간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는 상징이다.

이슬람 경전 코란에도 초승달이 등장한다. ‘그들이 그대 무함마드에게 초승달에 대해 물으면 그것은 인류와 성지 순례를 위하여 고정된 시간을 일러주는 표시라고 말할지어다.’ 이슬람 성월인 ‘라마단’이 초승달이 뜨는 시기에 시작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에도 초승달이 담긴 곳이 적지 않다. 터키, 파키스탄, 튀니지, 투르크메니스탄, 북 키프로스, 아제르바이잔, 몰디브 등의 국기에는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를 중심으로 주요 이슬람 국가가 포진하고 있는 이 일대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불린다. 이라크, 시리아, 소아시아의 일부와 이집트에 이르는 이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농경문명 발상지인데다 마치 초승달 모양이어서다. 보리 재배 흔적, 보리를 탈곡하기 위한 간석기, 점토로 만든 가옥이 발견돼 이를 입증하고 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술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맥주를 비롯한 술을 맨 처음 주조해 마시다가 정작 이들의 후손은 이제 종교적인 이유로 대부분 입에도 대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오늘날 유럽은 농작물, 가축, 기술, 문자 등을 모두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부터 받아들여 선진 문명을 이룬 반면 막상 발상지는 옛 영화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는 용어는 미국의 동양학자 제임스 헨리 브리스테드가 처음 쓰기 시작했다. 요르단의 압둘라 국왕은 2004년 말 ‘시아파 초승달 지대’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시리아, 이라크, 이란에 이르는 ‘시아파 초승달 지대’가 형성돼 주변국에 영향력을 확대하며 새로운 종파갈등을 초래할 것이란 염려를 내포한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말라버릴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천혜의 땅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인류 전체에 대한 경고장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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