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餘滴)

[여적]박경리

입력 : 2008-04-25 18:09:23수정 : 2008-04-25 18:09:28

‘주홍글씨’ ‘큰 바위 얼굴’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은 언젠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설가가 되기로 한 까닭을 이렇게 썼다. “변호사가 되려고 생각해 보니 늘 누군가가 다투기를 바라야 하고, 의사가 되어 볼까 싶어도 다른 사람이 아프기만 기다려야 하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네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소설이나 쓰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중국 작가 루쉰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간 뒤 신체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는 것보다 중국인의 병든 정신을 고쳐 주는 일이 더 급하다는 걸 깨닫고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가 문학에 투신한 이유는 선험적인 해학이다. “1924년 10월14일 문학과 축제를 너무나도 좋아했던 젊은 어머니가 나를 잉태한 채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의 국장(國葬)에 참가하게 되었다. 두 달 뒤인 12월19일 태어난 나는 장례식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당시의 조사(弔辭)와 조가(弔歌)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들었다. 그걸 듣고 숙명적으로 소설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 동기는 한층 희화적이다. 그는 야구장에서 시원스럽게 날아가던 2루타 공의 행방을 지켜보던 순간 소설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익살스럽지만 진지하게 털어놨다.

김동리는 ‘죽음의 공포’가 문학의 길로 들어선 동기였다고 고백했다. 그런가 하면 조성기는 “문학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고 문학적인 답변을 남겼다.

대하소설 ‘토지’의 원로작가 박경리 선생은 “삶에 대한 연민 때문에 글을 쓴다”고 한 적이 있다. 지난해 5월 13년 만의 새 작품집 ‘가설을 위한 망상’을 펴냈을 때다.

여든이 넘은 박 선생이 지병으로 쓰러져 한때 위독하기도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깝고 우울하다. 선생의 말 가운데 “언어란 강을 건너 피안에 도달할 수 있는 배이다. 피안을 향해 한 치도 나갈 수 없지만 언어의 배를 타지 않고는 강을 건널 방법이 따로 없는 게 실상”이라고 한 구절이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던 기억이 새롭다. 선생이 수많은 팬들의 응원과 기원에 힘을 얻어 하루빨리 쾌차하고 우리 곁에 오래 남아 ‘언어의 배’를 저어주길 고대한다.

'여적(餘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사바의 연꽃  (2) 2008.05.09
[여적]석양 음악  (0) 2008.05.02
[여적]비옥한 초승달지대  (0) 2008.04.18
[여적]서울의 몽마르트르  (0) 2008.04.11
[여적]시 외우기 벌(罰)  (0) 2008.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