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餘滴)

[여적]사바의 연꽃

입력 : 2008-05-09 18:22:39수정 : 2008-05-09 18:22:44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은 뒤 아버지에게 이런 말씀을 드린다. “저는 이전에 아버지 곁을 떠난 그가 아닙니다. 그는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물론 저는 같은 몸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그가 진흙이라면 지금의 저는 연꽃입니다. 그러니 그 연꽃에 대고 화풀이를 하지 마십시오. 아버지는 지금 진흙 때문에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로 하여금 아버지의 눈물을 닦게 해주십시오.”

부처의 상징인 연꽃은 열 가지 특성을 지녔다고 한다. 첫째,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離諸染汚).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는 말과 통한다. 둘째, 연꽃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不與惡俱). 셋째, 연꽃이 피면 물 속에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가 가득하다(戒香充滿). 한 사람의 인간애가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넷째, 연꽃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잎을 유지한다(本體淸淨). 다섯째,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해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面相喜怡). 여섯째,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다(柔軟不澁). 바람이나 충격에 잘 부러지지 않는다. 일곱째, 연꽃을 꿈에 보면 길하다(見者皆吉). 여덟째, 연꽃은 피는 동시에 필히 열매를 맺는다(開敷具足). 선행도 꼭 그만큼의 과실을 맺는다. 화과동시(花果同時)와 같은 뜻이다. 아홉째, 연꽃은 만개했을 때 색깔이 곱기로 유명하다(成熟淸淨). 열번째, 연꽃은 싹부터 다른 꽃과 구별된다(生己有想). 장미와 찔레, 백합과 나리는 꽃이 피어봐야 구별이 된다.

이 열 가지 특징을 닮은 사람을 연꽃처럼 아름답다고 한다. 부처가 청정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곧잘 연꽃에 비유한 것도 이 같은 고유한 덕성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진흙은 연꽃 없이 존재할 수 있어도 연꽃은 진흙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마음은 부처 없이도 수백만 개가 존재할 수 있지만 부처는 이 모든 마음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꽃 중의 군자’인 연꽃이 더러운 물에서 피지만 뿌리에는 반드시 맑은 샘물이 있어야 하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부처님 오신 날’ 연휴 동안 “사바(裟婆)의 연꽃이 되라”고 역설한 설법을 한 번이라도 떠올려 보자.


'여적(餘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침묵의 카르텔  (2) 2008.05.23
[여적]법칙 속의 이명박  (1) 2008.05.16
[여적]석양 음악  (0) 2008.05.02
[여적]박경리  (0) 2008.04.25
[여적]비옥한 초승달지대  (0) 2008.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