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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탐욕의 굴레

입력 : 2008-10-24 17:59:06수정 : 2008-10-24 17:59:24

부조리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오해>는 인간의 탐욕이 낳은 비극을 살싸하게 그렸다. 여인숙을 운영하는 모녀는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끔찍한 범행을 은밀하게 저지르기 시작한다. 투숙 손님 가운데 부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음식에 독약을 타 먹여 죽인 뒤 시체를 강물에 버리곤 한다. 금품에 욕심을 품고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투숙객으로 들어온다. 이 청년은 어려서 객지에 나가 성공한 후 어머니와 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돌아온 것이다. 청년은 어머니와 누이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어 신분을 숨기고 숙박을 신청한다. 투숙객이 오빠인 줄 모르는 누이는 음식에 독약을 타면서 이렇게 독백한다. “우리에게 행복과 사랑의 문을 열어줄 돈을 위해서 살인을 하는 거야.”

이튿날 아침 죽은 청년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다 신분증을 보고선 자신들이 죽인 사람이 아들이요, 오빠인 것을 알게 된다. 절망한 어머니는 아들의 시체를 버렸던 강물에 몸을 던진다. 누이도 이런 말을 남기며 죽음을 택한다. “천명이 이 범죄에 가담했다고 할지라도 죄는 불행할 뿐이다.” 돈이 행복과 사랑의 문을 열어줄 유일한 길이라고 믿은 모녀는 끔찍한 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질러왔지만 얻은 것은 성공해 돌아온 아들의 살해와 자신들의 죽음뿐이다.

논란의 중심에 놓인 쌀 직불금 부당수령에서도 사람들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공적 자금을 받은 공기업의 경영자·임직원들이 터무니없는 고액 연봉과 스톡옵션 잔치를 벌이다 여론의 질책으로도 모자라 연봉 삭감의 철퇴를 맞은 것 역시 탐욕의 굴레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도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한 신의 저주라는 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개미 투자자들은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벌고자하는 탐욕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뒤늦게 통한과 회오의 눈물을 훔친다. 시장의 탐욕이 위기를 불러오고 설거지는 언제나 애꿎은 납세자의 몫으로 돌아온다.

‘가난한 열 사람은 돗자리 하나에서 평화롭게 잠들지만 아무리 넓은 제국도 두 군주에게는 너무나 좁다’고 풍자한 <동방시집>의 저자 W R 앨저의 일격이 가슴을 차갑게 꿰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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