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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킹 목사의 꿈

입력 : 2008-11-07 18:03:27수정 : 2008-11-07 18:03:30

1950년 일본 미야자키 현 동해안의 무인도 고지마에 일본원숭이가 집단서식하고 있었다. 교토대 영장류연구소 학자들은 이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길들이기에 성공했다. 먹이는 밭에서 자란 흙투성이 고구마였다. 어느 날부터 한 원숭이가 고구마를 강물에 씻어먹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원숭이들이 따라했다. 고구마가 흙이 씹히던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무리의 반 수 이상이 씻어 먹기에 이르렀다.

원숭이들은 강물이 마르게 되자 바닷가에 나가 고구마를 씻어 짭짤한 맛까지 즐겼다. 이 같은 집단 행위는 놀랍게도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카자키 산에 서식하던 원숭이 무리에서도 관찰됐다. 두 곳의 원숭이들 간에는 어떠한 교류도 없었고, 노하우를 전해 준 원숭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 생물학자 이마니시 겐이치는 이 연구 결과에 따라 ‘공진화’(共進化)라는 획기적인 이론을 발표했다. 동물에게는 적자생존이나 생존경쟁의 다위니즘만 있는 게 아니라 협력관계도 존재하며, 개체의 진화가 아니라 함께 진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마니시는 이 공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백한마리째 원숭이>라는 책을 썼다. ‘백한마리째 원숭이’는 경계점을 찾기 위해 편의상 수치화한 것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첫 번째 원숭이’는 사회 변화를 선도하는 존재다. ‘백한마리째 원숭이 현상’은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 수가 일정량에 이르면 그 행동이 집단 내에만 국한되지 않고 거리나 공간을 넘어서까지 확산된다는 사회학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버락 오바마가 사상 첫 흑인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백한마리째 원숭이 현상과 비교해도 좋을 듯하다. 첫 번째 원숭이 역할을 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이 오바마라는 ‘백한마리째 원숭이’를 탄생시킨 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킹 목사가 1963년 노예해방 100주년을 맞아 포효하듯 토해낸 꿈은 ‘내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사는 것’이었다. 킹 목사의 꿈은 시간이 흘러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흑인들의 피와 눈물로 일궈낸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양적 변화가 임계점에 이르면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법칙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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