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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경영인 히포크라테스 선서

입력 : 2008-10-10 17:55:53수정 : 2008-10-10 17:56:04

‘나는 어떤 책임이 따른다 하더라도 죽음이나 파괴를 조장하거나, 또는 가난이나 무지를 방관하거나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불평등을 조장할 수 있는 수단에 내 발견과 발명품, 내 지식을 사용하지 않겠으며, 인류 평등을 증진하고 그들의 삶을 풍요롭고 자유롭게 하는 데 이를 사용할 것을 선서합니다.’

프랑스의 한 철학자가 의학도를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과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에게 ‘과학자를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만든 초안이다. <지구를 입양하다>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을 펴낸 미국의 사회변화창안연구소도 이와 흡사한 ‘과학자를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만들어 초급 과학자들에게 서명하도록 한 적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 18명 등 저명한 과학자들도 이 선서에 서명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경제학자 커크패트릭 세일은 “원자폭탄을 만든 사람들이 이런 선서를 했다면 지금의 세계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라고 되묻는다.

간호사들도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유사한 ‘나이팅게일 선서’와 더불어 직업전선에 입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8월 검사 임용식 때부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본받아 ‘검사선서’를 낭독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금융위기로 경영자들의 도덕성이 심판대 위에 오르자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2명이 ‘경영인을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개인적 이익이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고 불편부당의 정신과 기업의 투명성을 추구한다’는 다짐이 핵심이다. 이들은 경영학계도 의학이나 법학처럼 더욱 체계적인 교육과 자격시험이 필요하며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은 행동강령과 이를 어기면 제재를 가할 권위 있는 기구가 긴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업경영인에게조차 거창한 선서가 필요한 지경에 이른 것은 슬픈 현실임에 틀림없다. 의학 법학 경영학은 요즘 하나같이 선망의 대상이자 부(富)의 지름길로 통한다는 점에서 공교롭다.

적지 않은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의 배신자들’이란 낙인이 찍힌 게 안타까운 현주소이지만, 또 하나의 선서가 직업정신을 고양하고 타락을 최소화하는 소금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공염불’이라고 지레 매도할 까닭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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