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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악성 루머

입력 : 2008-10-03 17:58:03수정 : 2008-10-03 17:58:18

터무니없는 루머가 낳은 가장 끔찍한 사건은 2005년 8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일어난 일일 것 같다. 수십만명이 티그리스강 근처 사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느닷없이 자살특공대가 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서로 먼저 현장을 빠져나가려다 수백명이 인파에 짓밟히고 다리에서 떨어졌다. 당시 문제의 자살특공대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끝내 1000여명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황당한 소식이 전해졌던 기억이 아직 새삼스럽다.

루머는 흔히 공동체 안에서 불안이 가중되거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전환기에 있을 때 가장 활성화된다고 한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편견, 불확실성, 질투심 등과 어우러지면 루머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된다. 미국 심리학자 고든 알포트와 레오 포스트만은 루머가 단순화, 첨예화, 동화(同化)를 통해 널리 퍼진다고 한다. 루머 전파는 사실 확인, 관계 확장, 자기 확장이라는 심리적 동기에 따라 이루어진다.

악성 루머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만 믿는 안일하고 무비판적인 대중심리 때문에 쉽사리 근절되지 않는다. 부정적인 루머를 청소하려고 할수록 더욱 얼룩지는 경향이 많다. 근거 없는 루머가 삽시간에 퍼져버리는 것은 소문을 전하면서 죄책감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증권가가 악성 루머의 온상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극적인 자살로 삶을 마감한 인기 탤런트 최진실씨의 ‘사채설’을 처음 인터넷에 유포한 것도 증권사 여직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이런 확신을 더욱 굳혀주고 있다. 고인에 대한 애도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악성 루머와 악플은 우선멈춤을 모른다. 인터넷은 악플과 악성 루머의 고속도로가 돼 버렸다. 월드와이드웹(www)을 창안한 팀 버너스 리마저 인터넷이 갈수록 각종 악성 루머를 확산시키는 도구가 될 위험에 처했다고 최근에 우려한 적이 있을 정도다.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악성 루머를 만들거나 확산시키는 데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단도 이제 믿기 어렵게 됐다. 인터넷 악플과 악성 루머를 양심의 자정기능에만 맡겨둬야 할지 심각한 고민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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