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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북한 헌법

입력 : 2009-09-25 18:10:01수정 : 2009-09-25 18:10:03

북한 헌법은 이념적인 조항들을 제쳐두고라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적지 않다. 우선 수도와 국가(國歌)를 헌법조항에 담은 게 남한 헌법과의 차이점이다. 수도의 경우 1948년 제정된 북한 헌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首部·수도)는 서울시다’라고 규정했으나 1972년 개정 헌법부터 ‘서울’에서 ‘평양’으로 바꿨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행정수도 건설 문제가 ‘관습헌법’이란 용어를 동원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화젯거리로 떠오른 것도 수도 규정이 없는 헌법 때문이었다. 또 국민소환, 망명권, 선거 연령, 의무교육 연한의 11년 규정 등을 명시한 게 남한 헌법과 다르다. 반대로 영토조항을 규정하지 않은 것도 우리와 차이가 난다.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들 가운데 이채로운 부분도 많다. 이를테면 ‘국가는 학령 전 어린이들을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국가와 사회의 부담으로 키워준다’고 규정한 것은 출산율 저하로 골머리를 싸맨 남한으로서는 일견 부러운 일이다. 식량 부족 탓에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국가는 우리말을 온갖 형태의 민족어 말살정책으로부터 지켜내며 그것을 현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킨다’고 한 조항도 북한다운 발상이다. ‘세금이 없어진 우리나라에서 늘어나는 사회의 물질적 부는 전적으로 근로자의 복리증진에 돌려진다’는 조항 역시 흥미롭다. 북한은 1974년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세금을 없앤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국가재정은 거래수입금, 국가기업이익금, 협동단체이익금, 봉사료 수입금 등으로 운영된다.

북한은 지난 4월 11년 만에 헌법을 개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관심을 끄는 것은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모두 빼버린 일이다. 대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이데올로기인 ‘선군사상’이 비중 있게 언급됐다. ‘사회주의’란 용어는 그대로 살렸다. 일반적으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실적에 따라 분배하는 것을 사회주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하는 것을 공산주의로 구분한다. 사회주의는 ‘일한 만큼 갖는 사회’, 공산주의는 ‘필요한 만큼 갖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북한 헌법은 ‘공민은 능력에 따라 일하며 로동의 량과 질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고 명시했다. 엄격한 의미에서 공산주의는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역사상 공산주의는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이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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