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9-18 17:55:57ㅣ수정 : 2009-09-18 17:55:57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낯선 사람은 피하고 아는 사람만 모델로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외형을 똑같이 그리는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모델의 내면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게 관건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고흐는 무엇보다 그 사람의 내면 빛깔을 손 모양 속에 담았다. 고흐가 그린 ‘감자먹는 사람들’에서 농부들의 손을 보면 소박한 밥상 위로 감자를 나누는 손이 선명하게 보인다. 굳은살이 박인 농부들의 손에서 노동의 신성함이 배어 나온다. 고흐는 노동을 가장 신성한 주제로 삼았다. ‘베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고흐가 노동과 농민, 노동자에게 애정을 쏟은 데는 프랑스 탄광지역을 다룬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 <제르미날>과 서민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 때문이다. 노동의 가치는 경제 요소보다 고귀하며 직접 인격에서 나온 것임을 일깨워준다.
박기성 한국노동연구원장이 엊그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헌법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헌법에 노동3권을 규정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으며 대개 법률에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는 이유를 끌어다댔다. 실제로 헌법에 따로 노동3권을 보장하는 명문 규정을 두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당연한 자연법적 권리라는 사상이 깊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신성한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일천한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사회 일각에선 노동을 하나의 상품이나 생산에 필요한 힘으로만 보려는 경향이 여전하다. 우리 헌법 규정은 국가가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밝히는 것일 뿐이지 헌법의 규정에 의해 비로소 노동3권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3권이 부여됨으로써 세 가지 역사적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도 간과할 수 없다. 우선 노동3권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준 체제 보존적 권리라는 점이다.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면 노동자들은 파업이 아니라 혁명을 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노동3권은 자본주의를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사회계약체제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셋째 노동3권은 자본주의 체제를 건강한 시민사회로 승화시켰다. 노동3권은 사회 전반에 걸쳐 수많은 작은 권력들을 만들어내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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