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재에서

우리 사회의 ‘상상력 빈곤’ 2009.12.18 17:32 본문 ‘위약 효과’(플라시보 효과)를 처음 발견한 프랑스의 약사이자 심리치료사 에밀 쿠에는 ‘상상력이 의지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밝혀냈다. 어떤 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지력보다 상상력이 한층 더 긴요하다는 의미다. 의지력이 가장 큰 관건이라고 여기는 사회통념을 뛰어넘는 생각이다. 쿠에가 강조하는 ‘상상력의 힘’은 세 가지 법칙으로 요약된다. ‘의지와 상상력의 대결에서는 언제나 상상력이 이긴다. 의지와 상상력이 같은 방향으로 발휘되면 그 에너지는 두 배가 아니라 몇 배로 늘어난다. 상상력은 스스로 조종할 수 있는 영역이다.’ 쿠에는 상상력이 의지력을 이기는 대표적인 사례로 아무리 자겠다고 굳게 마음먹어도 졸리지 않으면 즉시 잠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든다. 자기암.. 더보기
패권다툼 반복의 역사, 힘겨운 아프간 2009.12.04 17:33 본문 1999년 5월 미국 의회는 ‘실크로드 전략 법안’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이름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는 소련 붕괴 이후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과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인 의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러시아·중국·이란 등을 견제하고 약화시키려는 목적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진보적인 민주당 출신이지만 주저없이 서명했음은 물론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중앙아시아에 미군을 배치하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의 하나바드 군사기지는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전초기지가 됐다. 이 법안과 관련된 미 의회보고서를 보면 훨씬 확연해진다. “100여년 전 중앙아시아는 차르 러시아, 식민주의 영국, 나폴레옹의 프랑스, 페르시아, 오토만.. 더보기
가장 숭고한 복수… 용서 2009.11.20 17:36 “내 아들을 죽인 그 사람을 용서하라고요? 이해하라고요?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 마세요. 그건 가장 사치스러운 충고이니까.” 전도연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에 나오는 신애의 절규는 감정을 공유할 수는 있어도 아픔을 대신 짊어지긴 어렵다는 걸 실감나게 보여준다. 기독교의 회개와 용서를 다루고 있는 이청준의 단편소설 나 이를 각색한 은 모두 우리가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귀감이다. 2006년 10월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니켈마인스라는 작은 시골마을의 아미쉬 원룸 스쿨에 우유배달원이 침입해 수업 중이던 여학생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5명이 목숨을 잃고 5명은 중상을 입은 이 충격적인 사건은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 더보기
식물도 사람과 소통하는데… 2009.11.06 17:35 2002년 마흔아홉 살로 세상을 떠난 외팔 서양화가 채희철은 신비스러운 일화를 남겼다. 그의 화실에는 온갖 화분들로 가득했다. 주로 남들이 버린 걸 지극정성으로 살려놓은 것이다. 그는 온종일 나무와 꽃들에게 자상한 말과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퇴근할 때는 작별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모두들, 잘 자라! 밤새 무럭무럭 자라거라.” 하지만 그가 숨진 지 얼마 후 화분의 식물들이 무단히 모두 죽어버렸다고 한다.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의 어떤 마을 사람들은 나무가 너무 커서 도끼로도 베기 어려울 때 모두 그 나무 곁으로 모인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일제히 나무를 올려다보며 힘껏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한 달 동안 소리를 지르면 신기하게도 나무는 기력을 잃어 쓰러진다고 한다. 고함소.. 더보기
뒤틀린 문화국가 2009.10.23 16:58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명저 에서 “한 나라가 세계무대에서 한 시대의 주역으로 성장할 때에는 경제력, 군사력의 성장과 더불어 반드시 문화의 융성이 이루어졌다”고 갈파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생전에 ‘아름다운 문화국가’를 그토록 희구했던 것도 기실 이 같은 연유일 게 분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9일 라디오 연설에서 “내가 꿈꾸는 선진일류국가도 경제적 수준에 걸맞은 문화수준을 가진 문화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역설한 것은 ‘문화의 달’을 맞아 격조 있는 지도자로서의 위상 제고를 겨냥한 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심지어 반대 여론이 거센 4대강 살리기도 ‘문화국가’와 연결고리를 짓는다. 화면을 장식하는 홍보영상은 “2011년 활기찬 문화국가로 변모합니다… 자주 침수되지 않는 상.. 더보기
한글의 오늘에 얽힌 사연 2009.10.09 17:41 영상의 힘이 탁월한 복제능력이라면 문자의 힘은 무한한 상상력이다. 문자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언급은 이를 잘 뒷받침한다. “인류는 공간 활동에서는 바퀴, 정신 활동에서는 문자라는 두 가지 발명에 의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오늘날 한글이 서양 알파벳을 비롯한 다른 문자를 능가한다는 사실은 전문학자들 사이에서도 큰 이견이 없다. 의 저자인 퓰리처상 수상 진화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한글은 독창성이 있고 기호·배합 등 효율성에서 각별히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다”라고 격찬한다. 독일 함부르크대 베르너 삿세 교수는 “서양이 20세기에 비로소 완성한 음운이론을 세종대왕.. 더보기
‘주고 받음’의 미학, 선물 선물의 유래가 그리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족간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귀한 소금을 둘러싸고 부족 간의 약탈과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물물교환이 이뤄졌던 것이 선물의 시초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남아도는 가죽과 소금의 물물 교환이 인심과 실리를 동시에 얻는, 세련된 방식인 선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선물의 기원이 원시시대에 남자가 식량으로 여자의 환심을 사려했던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설도 있다. 호감을 사기 위해 주는 선물은 특정집단에서 자연스레 문화적 관습이 됐다고 한다. 선물 문화는 아프리카 갈로족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전해온다. 갈로족은 땅을 공평하게 나누어 농사를 지었지만 빈부격차를 막을 수 없어 3년에 한 번씩 명절 때 곡식을 나눴다. 토질, 날씨, 농부의 정성에 따라 개인.. 더보기
日 정권교체… 진보, 아직 갈 길이 멀다 2009.09.11 17:15 르포작가 하야사카 다카시가 엮은 일본 유머집 의 한 토막이다. 호화 여객선이 항해 도중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기 시작했다. 선장은 남자 승객들에게 어서 빨리 배에서 탈출해 바다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독려했다. 선장은 각기 다른 국적의 승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뛰어내리기만 하면 당신은 영웅입니다.” (영국인)“뛰어내리기만 하면 당신은 신사입니다.” (독일인)“이럴 때는 뛰어내리는 것이 이 배의 규칙입니다.” (이탈리아인)“뛰어내리면 여성들의 관심을 끌 수 있어요.” (프랑스인)“뛰어내리지 마세요.” (일본인)“다른 사람들도 다 뛰어내리고 있어요.” 일본의 집단주의적 국민성을 표징하는 풍자다. ‘빨간 신호등도 모두 함께 건너면 두려울 것 없다’고 했던 한 일본 개그맨의.. 더보기
삶 속에 들어온 자연, 그 청신한 은유 2009.08.28 17:29 Keyword Link | x 정제되고 간결한 글이지만 격조 있고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어 옷깃을 여미고 곱씹게 만든다. 때론 그윽한 수묵담채화를 떠올리는 영상이 문장 속에 농축돼 있다. 더러운 곳에 처하더라도 항상 깨끗한 마음을 지닌다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경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의 정취, 세심한 관찰력에서 현현하는 사물의 참 뜻, 개인의 기호와 독서 취미에 이르기까지 주제와 소재의 폭은 실로 다양하다. 도덕적 설교나 계몽의 의지 없이 한가로운 풍경과 즐거운 만필(漫筆)이 곁들여져 대중과도 친숙할지언정 거리감이 없다. 청언(淸言), 잠언(箴言), 경언(警言), 철언(哲言), 운언(韻言)으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 홍자성(洪自誠)의 , 육소형.. 더보기
다른 듯 닮은, 불편한 성장에너지 ‘라이벌’ 2009.08.14 17:22 라이벌은 ‘강물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라틴어 ‘리발리스’(rivalis)란 말에서 유래했다. 강물이 풍족하면 함께 나눠 쓰는 이웃이자 친구가 되지만, 부족하면 싸움을 벌이는 라이벌이 된다. 강을 따라 형성된 마을들은 소유권을 정할 수 없는 강물을 놓고 늘 같이 쓰며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라이벌은 적과 다르다. 적은 타도와 섬멸의 대상이지만 라이벌은 대립하면서도 때로는 협력하는 공존공생의 대상이다. 라이벌은 불편한 존재이지만 성장 에너지이기도 하다. 라이벌이 없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갈망이 없다는 것과 동의어다. 한국 현대사에서 ‘세기의 라이벌’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을 보면 20세기 세계 미술계를 양분했던 앙리 마티스와 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