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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뒤틀린 문화국가

2009.10.23 16:58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명저 <강대국의 흥망>에서 “한 나라가 세계무대에서 한 시대의 주역으로 성장할 때에는 경제력, 군사력의 성장과 더불어 반드시 문화의 융성이 이루어졌다”고 갈파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생전에 ‘아름다운 문화국가’를 그토록 희구했던 것도 기실 이 같은 연유일 게 분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9일 라디오 연설에서 “내가 꿈꾸는 선진일류국가도 경제적 수준에 걸맞은 문화수준을 가진 문화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역설한 것은 ‘문화의 달’을 맞아 격조 있는 지도자로서의 위상 제고를 겨냥한 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심지어 반대 여론이 거센 4대강 살리기도 ‘문화국가’와 연결고리를 짓는다. 화면을 장식하는 홍보영상은 “2011년 활기찬 문화국가로 변모합니다… 자주 침수되지 않는 상단 부분은 높게 성토하여 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되어 지역의 문화행사와 이벤트 무대로 제공됩니다”라고 설득한다. 토건국가가 아니라 문화국가임을 부각하는 화장술도 비교급 차원을 넘어선 최상급 수준이다.

문화국가라는 용어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으로 널리 알려진 독일 철학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국가는 문화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면서 건전한 문화육성과 실질적인 문화향유권 실현의 책임을 다하는 국가로 요약된다. 문화국가 개념 정립의 선구자인 법학자 에른스트 루돌프 후버는 문화국가의 개념적 요소로 국가로부터 문화의 자유, 문화에 대한 국가의 기여, 국가의 문화형성력, 문화의 국가형성력, 문화적 산물로서의 국가 등 다섯 가지를 든다.

마르크 퓌마롤리 프랑스문학사학회장은 <문화국가>(경성대출판부)에서 문화에 관료주의가 스미는 순간 창조력은 고갈된다고 경고한다. 문화의 생산과 유통을 지도하려 들고, 그 지도력을 당연한 선결 임무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파 자유주의자로 분류되는 퓌마롤리는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작가 앙드레 말로 이후의 프랑스 문화정책에 대한 찬양일색인 분위기 속에서 대중들의 자발성과 예술의 전복성을 제도화하는 문화정책의 위험성을 비판한다. 그는 프랑스 문화의 고품격과 방대함을 은연중 자랑하지만 국가나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문화정책과 문화국가의 정체성에 우려를 나타낸다.

프랑스는 1959년 정부에 문화부를 갖춘 세계 최초의 민주국가다. 앙드레 말로는 기발하고 혁신적인 정책을 도입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건축비의 1% 이상을 문화적 용도에 써야 한다고 규정한 ‘1퍼센트법’과 지방 문화원 격인 ‘문화의 집’을 전국적으로 건립한 것도 그의 상상력에서 나왔다. 이런 정책들은 한국을 비롯해 수많은 나라들이 복사품을 내놓을 정도로 반향이 컸다.

퓌마롤리는 앙드레 말로의 권위 아래 확립된 문화촉진현상을 진정 새로운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문화국가’ 프랑스에서 정부가 시장의 규율, 한계, 투명성 등을 확립해야 하는 책무를 망각하고 외려 혼란을 초래했다고 꼬집는다. ‘문화국가론’의 권위자인 김수갑 충북대 교수의 말처럼 국가가 문화적 경향에 대한 일방적 지원이나 배제 등 특정한 방향으로 문화의 발전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는 채찍이기도 하다.

취임 일성으로 ‘품격 있는 문화국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던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은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화계 인사들의 물갈이를 통해 문화 좌표의 일방적인 우향우를 꾀하고 있다.

최근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들을 텔레비전 화면에서 잇달아 추방하는 것을 정권에 대한 충성으로 여기는 풍토도 문화의 다양성을 뜨악하게 보는 ‘뒤틀린 문화국가’의 속성이다. 문화 관료로 변신했던 좌파 지식인 앙드레 말로는 반대 코드인 우파 드골 정권의 나팔수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기품 있는 문화의 대중적 확산’이라는 사명감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