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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식물도 사람과 소통하는데…

2009.11.06 17:35

2002년 마흔아홉 살로 세상을 떠난 외팔 서양화가 채희철은 신비스러운 일화를 남겼다. 그의 화실에는 온갖 화분들로 가득했다. 주로 남들이 버린 걸 지극정성으로 살려놓은 것이다. 그는 온종일 나무와 꽃들에게 자상한 말과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퇴근할 때는 작별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모두들, 잘 자라! 밤새 무럭무럭 자라거라.” 하지만 그가 숨진 지 얼마 후 화분의 식물들이 무단히 모두 죽어버렸다고 한다.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의 어떤 마을 사람들은 나무가 너무 커서 도끼로도 베기 어려울 때 모두 그 나무 곁으로 모인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일제히 나무를 올려다보며 힘껏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한 달 동안 소리를 지르면 신기하게도 나무는 기력을 잃어 쓰러진다고 한다. 고함소리가 나무의 영혼을 죽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식물도 바흐의 아름다운 오르간 음악을 가장 좋아하고, 자동차 소음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때로는 자살충동까지 느낀다는 숲생태학자 차윤정 박사의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일본 나고야에서 있었던 실화도 이채롭다. 외딴집에 살던 한 여성이 괴한에게 목숨을 잃었다. 목격자라곤 방에 있던 선인장뿐이었다. 범인에 대한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었다. 고심하던 경찰은 언젠가 들었던 거짓말 탐지기를 선인장에 연결하는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유력한 용의자가 들어오자 거짓말 탐지기의 바늘이 심하게 움직였다. 몇 번이나 반복 실시해도 그 용의자만 들어오면 똑같은 반응이 나왔다. 수사관은 끈질긴 추궁 끝에 자백을 받아내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일본 면역전문가의 실험 이야기를 들으면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린다. 선인장 1만개를 두 그룹으로 나눠 거짓말 탐지기에 연결했다. 한 쪽은 사랑스럽고 좋은 말을, 다른 한쪽은 욕과 협박조의 나쁜 말을 1년간 계속했다. 그 결과 긍정적인 말을 들은 쪽은 싱싱하게 자라서 꽃을 피운 반면 비방과 욕을 들은 쪽은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시들어 거의 죽어버렸다고 한다.

‘나무 통역사’로 불리는 미국 식물심리학자 레슬리 카바가는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목소리>(눈과마음)에서 식물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카바가는 나무들의 목소리야말로 그 어떤 수행자의 말보다 자혜롭고 어떤 시보다 향기로우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한 자리에 서서 스쳐가는 바람을 소리 없이 감지하고, 지나가는 새와 짐승만을 보며 한평생 보내야 하는 식물들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 그리 대수롭겠느냐고 하겠지만 지은이는 식물들이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는 말들이 무수히 많다는 걸 보여준다.

‘식물의 아버지’라 불린 식물육종가 루터 버뱅크가 남긴 ‘일주일 안에 식물과 이야기하는 법’을 연상케 한다. 식물의 이름을 지어주고, 이미지 훈련을 통해 식물과 일체화를 시도하며, 애정을 듬뿍 담아 지며리 칭찬하면 반드시 반응이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식물들에게도 사랑과 고독, 슬픔과 욕망, 관계와 죽음을 의식한다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전한다. 초감각적인 지각을 지니고 있어 특정인과 유대관계를 깊이 맺게 되면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된다는 사실을 식물들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보여준다. 친구 대하듯 다정다감한 마음을 전하면 감응이 분명히 나타난다는 것이렷다. 다소 비약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줄 때도 있지만 찰스 영국 왕세자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식물과의 대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는 심정을 이해할 듯싶다.

추색이 완연한 요즘 야외로 나가 나무와 풀 옆을 지나가다 보면 그리움이 갈급한 영혼처럼 말이라도 걸려는 것 같지 않은가. 소통수단과 공간이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해 소통 부재, 소통 결핍을 하소연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무슨 역설인가. 하찮게 여기는 식물조차도 더불어 사는 삶과 진지한 대화를 즐기려는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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