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약 효과’(플라시보 효과)를 처음 발견한 프랑스의 약사이자 심리치료사 에밀 쿠에는 ‘상상력이 의지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밝혀냈다. 어떤 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지력보다 상상력이 한층 더 긴요하다는 의미다. 의지력이 가장 큰 관건이라고 여기는 사회통념을 뛰어넘는 생각이다.
쿠에가 강조하는 ‘상상력의 힘’은 세 가지 법칙으로 요약된다. ‘의지와 상상력의 대결에서는 언제나 상상력이 이긴다. 의지와 상상력이 같은 방향으로 발휘되면 그 에너지는 두 배가 아니라 몇 배로 늘어난다. 상상력은 스스로 조종할 수 있는 영역이다.’ 쿠에는 상상력이 의지력을 이기는 대표적인 사례로 아무리 자겠다고 굳게 마음먹어도 졸리지 않으면 즉시 잠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든다. 자기암시를 통해 얼마든지 상상을 좌우할 수 있다는 세 번째 법칙에 주목한 것이다.
상상력이 의지보다 열 배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매일 일정 기간 동안 과녁 앞에 앉아서 다트를 던지는 상상을 하면 실제로 연습한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건 심리학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상급 프로 선수들이 철저한 정신적인 예행연습과 상상력 훈련 방법을 통해 골프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는 게 요즘의 실정이다.
9·11테러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는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의 상상력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는 9·11 사태가 네 가지 종류의 실패를 드러냈다고 본다. 상상력, 정책, 역량, 운영의 실패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실패는 상상력의 빈곤이었다.” 9·11 사태 직전까지 끊임없는 테러정보를 입수하고도 그럴 가능성에 대한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정책의 시발점은 상상력이다.
‘유쾌한 미학자’란 애칭을 지닌 진중권은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휴머니스트)에서 21세기에는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 힘’이라고 선포한다. 상상력이 곧 생산력이라는 명쾌한 메시지다. 상상력이 부드럽고 유연한 놀이정신에서 나온다는 시선이 책 전체를 관류한다. 미래에는 노동이 유희가 될 것이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예언도 들어맞은 셈이다.
지은이는 상상력 혁명으로 맞이한 사유의 특징을 비선형성·순환성·파편성·중의성·동감각·상형문자·단자론이라는 일곱 개의 키워드로 감흥 깊게 펼쳐나간다. 책의 내용과 구성도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주사위, 체스, 카드, 불꽃놀이, 마술, 만화경 등 예술 작품에 등장한 스무 가지 놀이가 상상력으로 뻗어가는 방법론을 탐색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책 자체가 하나의 놀이이자 놀이터다. 300여 컷에 달하는 그림에 감춰져 있는 크로스워드 퍼즐 같은 텍스트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상상력의 대표주자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꼽는다. 500년 전 사람이었던 다빈치는 현대 비행기와 유사한 비행기의 설계도를 그렸다. 실질적인 비행에 성공한 최초의 비행기가 20세기 초에 나온 사실에 비춰보면 다빈치의 상상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저자는 다빈치를 상상력에 구속이 없는 ‘영원한 소년’으로 묘사한다. ‘상상력의 세계=어린아이의 세계’라는 등식이 성립한다고 해도 괜찮겠다.
그러고 보니 <상상력에 엔진을 달아라>의 저자인 다자이너 임헌우가 일갈했던 말이 떠오른다. “앞으로의 문맹자는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상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 말은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사진작가 라즐로 모홀리 나기가 1920년대에 “미래의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모르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했던 경구에서 한발 더 나간 것이다. 상상력의 빈곤은 세밑의 논란거리인 광화문 광장 디자인 같은 문화분야뿐만 아니다. 삽질 외에는 두드러지는 게 없어 보이는 정치, 행정, 사회정책 등속에서 숱하게 눈에 잡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