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하면 대개 부동산을 먼저 떠올린다. 웬만하면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강남 아파트가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처럼 느껴진다. 흥미로운 건 강남구 주민들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주택을 보유한 고위공직자 구청장을 뽑았다는 사실이다. 공교로운 일치이겠지만 상징성이 크다.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무려 42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본인 명의의 강남구 아파트 1채와 오피스텔 38채, 속초시 오피스텔 1채, 배우자 명의인 강남구 복합건물 2채를 포함해서다.
강남구청장과 같은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절반가량(48.8%)이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3채 이상 보유자도 17.8%에 달한다. 고위공직자는 일반 국민과 비교하면 부동산을 평균 5배 이상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보유 지역도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집중됐다. 지난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국회의원을 포함한 4급 이상 고위공직자 2581명의 재산공개 내용을 분석해 발표한 결과다.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공직자들의 다주택 비율이 이처럼 높다는 사실은 국민의 눈에 뜨악해 보인다. 이재명정부가 실수요자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 안정을 꾀하고 강도 높은 규제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으나 신뢰를 주지 못해서다.
선출직·임명직을 막론하고 국가 의사결정 최전선에 있는 공직자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2채 이상의 집을 소유한 다주택자라는 사실은 단순한 통계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는 부동산 불평등 구조의 중심에 공직사회가 자리잡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광경이다. 부동산 시장 불안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무주택 서민과 청년층이다. 이들에게 고위공직자의 다주택은 박탈감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을 넘어 계층 이동의 마지막 사다리이자 삶의 안정성을 결정하는 핵심요소다. 집값은 노동소득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올랐다.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과 청년층이 떠안았다. 부동산 자산은 단기간에 수억원, 수십억원이 오르는 자본이득을 낳았다.
다주택 공직자들은 본능적으로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다. 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집값이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자 ‘근로 무용론’과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집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의 고갱이가 아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이익을 얻는 위치에 있을 때 발생하는 이해충돌의 구조적 위험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오래전부터 굳어져 왔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평생을 일해도 서울 집 1채 사기 어렵다는 절망감에 빠졌다. 가계는 대출에 기대어 삶의 안전망을 갉아먹고 있다. 부동산이 삶의 기반이 아닌 투기자산으로 인식되면서 사회 전반의 가치체계마저 뒤틀렸다.
그럼에도 공직사회가 스스로 이해관계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사회적 불신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다주택 보유는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는다. 정책 결정자들이 부동산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먼저 자신들의 자산구조와 이해충돌 가능성을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이해충돌 방지 장치, 더 투명한 자산 공개 제도, 다주택 공직자의 정책 참여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이다. 이는 공공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책 결정 과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공직자의 정책적 중립성과 경제적 투명성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국민은 부동산 부자인 정치인과 관료들이 자신들이 손해 보는 정책을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국민은 완벽한 정책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국민의 삶을 같은 시선에서 바라보고, 동일한 조건 안에서 고민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고위공직자들의 다주택 문제는 이러한 기대가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국민을 화나게 하는 것은 부동산정책 입안자들의 위선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공직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대안은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이 주거용 1주택을 제외한 모든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도록 강제하는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이다. 부동산 백지신탁은 이미 주요 정당의 선거공약으로 등장하고 실제 법안 논의도 이뤄졌다.
현재 시행되는 이해충돌 방지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특히 부동산 관련 직무에 대한 회피의무와 신고의무를 더 명확히 해야 한다. 다주택자인 공직자가 부동산 관련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심의와 투표권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다주택자에게는 높은 수준의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중과를 적용하는 것이 자산 불평등 완화와 주택시장 안정의 핵심적인 방안이다. 공직자 본인이 다주택자인 상황에서 규제 강화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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