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안전한 직업은 없다. 인공지능(AI)이 인간 일자리의 74%를 대체할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나왔다. 선진국 기업 대표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로는 응답자의 41%가 AI의 인력감축을 예상한다.
대표적인 AI 선도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미 올해 직원 1만5000명을 줄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미국 빅테크의 대규모 감원 바람은 MS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아마존은 2030년까지 사업 운영의 75%를 자동화하고 60만명의 일자리를 로봇으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IBM 메타(페이스북) 바이두(중국) 같은 글로벌 빅테크들도 감원에 동참했다. 전문화한 고숙련 노동도 더는 AI 기술확산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상징성이 크다.
마침내 ‘잡포칼립스(jobpocalypse)’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일자리(job)’와 ‘종말(apocalypse)’의 합성어다. 인간 수명은 늘어나지만 일자리 수명은 짧아진다. AI가 일자리를 없애기보다 새로운 혁신을 촉진할 것이라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처럼 과도한 비관론에 선을 긋는 이들이 더러 있긴 하다. 단순반복 업무는 자동화되지만 AI 시스템을 설계 관리 검증하는 직무는 새로 생겨난다는 뜻을 담았다.
하지만 ‘인공지능 대부’로 불리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는 “인공지능 혁명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던 기존의 산업혁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경종을 울린다. AI가 대체하는 일자리의 수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지는 의문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과 진로 지도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AI로 말미암아 청년들의 초급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 요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정답 중심, 강의실 중심에 머물러 있으며 청년들에게 필요한 새로운 문제 해결 역량, 디지털 리터러시, 협업, 창의적 응용력을 충분히 길러주지 못한다. 대학은 학생에게 정답을 주는 곳이 아니라, ‘질문 만드는 법을 훈련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잡포칼립스가 예고하는 미래는 한 직업을 평생 유지하는 시대의 종말이다. 정책은 여전히 ‘최초 취업’만 해결하면 되는 것처럼 움직인다. 문제는 취업이 아니라 전환 능력이다. 청년들은 산업 변화의 최전선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는 세대이자 변화에 가장 빠르게 적응할 잠재력도 가진 세대다.
그렇기에 정부의 역할은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통계상 취업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돕는 데 집중돼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청년 대상의 디지털·AI 기반 역량 교육을 보편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은 AI 교육이 일부 청년층의 선택지이거나 취업 프로그램의 하나로 제공되지만 잡포칼립스 시대에는 모든 직군에서 기본적인 디지털 역량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전환할 수 있도록 장기적 ‘리스킬링(reskilling)’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지금은 교육이 필요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국가가 일정 기간마다 재교육 지원금(바우처)을 지급하고, 직무 전환 상담과 경력 설계를 함께 제공하는 전환형 인생주기 정책이 필요하다. 싱가포르의 직무역량 향상정책(SkillsFuture)처럼 국민 누구나 주기적으로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 청년에게는 생존 전략이 된다.
기업의 신입 채용 부담을 사회가 분담하는 구조도 중요하다. 한국의 청년취업난은 신입을 기피하는 기업문화와 깊이 연결돼 있다. 기업은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원하고, 청년은 경험이 없어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정부는 신입 교육 지원 제도를 확대해 기업이 청년을 뽑는 것을 투자로 인식하게 해야 한다. 청년이 일을 배우는 시간은 경제 전체의 자산이 된다. 기업이 모든 비용을 떠안는 현재의 구조로는 잡포칼립스 시대의 빠른 직무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청년의 직업 형태는 빠르게 다양해지고 있으나 고용보험·산재보험 같은 안전망은 여전히 정규직 중심이다. 잡포칼립스 이후 더 많은 청년이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고 여러 직업을 동시에 가지며 비정규적 형태로 시장에 참여할 게 분명하다. 소득 기반 보험 체계 확대,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 보호, 단기·중기 계약직의 경력 인정 체계 등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잡포칼립스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청년세대가 미래의 희생양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 한국의 청년 정책은 취업 지원을 넘어 커리어 생태계 구축으로 나아가야 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스펙이 아니라 더 나은 구조다. 그 구조를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잡포칼립스는 어쩌면 한국 사회가 오래 미뤄왔던 노동·교육·산업 구조 개혁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경고음이다. 잡포칼립스를 새로운 기회의 시대로 바꿀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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