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고 고질적인 산업현장의 참사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나서 산업재해 근절 의지를 강력히 밝혔지만 그조차 무색하다. 극약처방이라 불리는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제정됐으나 산업재해는 백약이 무효인가 싶다. 지난주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붕괴사고로 5명(추정 2명 포함)이 숨지고 2명이 매몰된 상태다. 후진국형 산재가 끊이질 않는 현실이 통탄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사고는 하청업체가 맡은 일터에서 일어났다. 가동이 끝난 노후설비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안전성을 치밀하게 검토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가운데 하청노동자 비율이 47%를 넘어선 것으로 9일 드러났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주영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현황’을 보면 산재 사망 노동자 가운데 하청노동자 비율이 2022년 44.1%에서 지난해 47.7%로 늘어났다. 올해 들어서는 44.3%(6월 말 기준)로 나타났다. ‘위험의 외주화’가 ‘죽음의 외주화’로 연결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전 비용과 위험을 그대로 하청에 전가하는 ‘위험의 외주화’가 반복되면서 하청노동자가 죽음으로 내몰린다. 외주화 자체는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경영 전략의 하나로 여겨진다. 한국 사회에서 외주화는 ‘책임의 외주화’ ‘위험의 외주화’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변질됐다. 원청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이윤 창출에 직접적인 핵심 업무를 제외한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에 위탁한다.

하청업체는 원청이 제시하는 낮은 단가에 맞춰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안전설비 투자나 충분한 인력 확보, 체계적인 안전교육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원청의 이윤 극대화라는 목표 아래 하청노동자들의 안전비용은 손쉽게 절감되는 1순위 희생양이 된다. 이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이 영세한 하청업체로 분산되거나 개별노동자의 부주의로 치부되기 쉬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위험의 외주화’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이를 ‘죽음의 외주화’라고 부른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같은 수많은 비극적인 중대재해는 모두 ‘죽음의 외주화’라는 구조 속에서 발생했다. 하청노동자의 죽음은 원청에는 ‘남의 회사 직원’의 사고로 치부되며, 도덕적 책임감조차 외주화된다.
“정규직 안 해도 좋습니다. 더 이상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은 김용균씨의 동료 이태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토해낸 절규다.
‘죽음의 외주화’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땜질식 처방을 넘어선 구조적 개혁이 필수다. 원청 책임 강화와 법적 제재의 실질화가 중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망을 피해 가려는 기업의 행태를 막고, 경영책임자에게 실질적인 책임을 물어 안전시스템 구축에 자원을 투입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불운’이 아닌 ‘시스템 부재’의 결과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김용균씨의 죽음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돼 유해·위험 작업의 도급이 원칙적으로 금지됐지만 아직도 수많은 예외 조항이 남아 있다.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고위험 업무는 외주화를 금지하고 원청이 직접 고용해 안전 관리를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사고에서 한국동서발전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이 회사에서는 최근 5년간 39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다는 통계가 있다. 지난 7월에도 동해화력발전소 공사 현장에서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위험한 공사를 하청업체에 떠맡긴 채 관리와 감독에 소홀한 게 아니었는지 답해야 한다. 공공기관 발주 공사에서 중대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것에 대해 정부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안전의 내재화’로 나아가야 한다. 안전은 비용이 아닌 투자와 윤리의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업장에서는 관리감독자 대상 안전문화 내재화 교육을 통해 사고조사, 재발방지 대책, 비상 대응 같은 실질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안전은 규제가 아니라 시스템이어야 한다. 법과 제재로는 부족하다. 현장의 안전불감증과 하청구조의 왜곡을 바로잡지 않으면 강한 처벌도 효과가 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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