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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무역전쟁 휴전 택한 트럼프 시진핑 정상회담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외교가의 속설 그대로였다. 세계의 눈과 귀를 모은 부산 미·중 정상회담은 각자의 공격 무기를 거둬들여 전략적 휴전 상태로 막을 내렸다. ‘세기의 담판’이라고까지 불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좌는 서로 만족하는 양보 카드로 모양새 좋게 마무리됐다. 


 이로써 세계 경제를 불확실성의 경지로 몰아넣었던 미·중 무역전쟁은 봉합 국면에 들어섰다. 두 정상이 6년 4개월 만에 다시 만나 반년 넘게 이어진 갈등 상황을 정리했으나 급한 불만 끈 셈이다.


 정상회담 결과, 미국은 중국에 부과한 합성마약 펜타닐 관세 20%를 10%로 낮추기로 하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를 1년 유예하기로 했다. 일단 약속 기간은 1년이지만 유예가 해마다 연장되길 기대하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다. 미국이 중국에 위협하던 100% 추가 관세도 철회했다. 미국의 중국산 관세율은 평균 55%에서 45%로 떨어뜨렸다. 여전히 50% 관세를 무는 인도, 브라질보다 낮다. 중국은 미국산 대두 구매를 재개하기로 했다. 사실, 두 나라는 지난 25~26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5차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이같은 합의안의 틀을 잡아 정상회담에 올렸다.


 두 정상은 판을 깨지 않기 위해 다른 민감 사항은 피하고, 경제·무역 관계에만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대만 문제와 러시아 석유 수입 문제는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중 무역 전쟁은 반년 전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투하로 촉발됐다. 거의 모든 나라가 트럼프의 관세폭탄에 절절매는 모습이었지만, 중국은 달랐다. 미국의 급소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희토류는 반도체·전기차·군사장비에 이르기까지 미국 첨단산업의 필수 핵심광물이다. 희토류는 경제적 가치는 크지 않지만, 전략적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거래와 협상의 달인이라는 트럼프도 미국의 급소를 쥐고 있는 중국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중국은 미·중 무역갈등이 고조되던 지난 4월 희토류 17종 가운데 7종에 대한 전략적 수출통제에 나섰다. 지난 9일에는 수출통제 대상 희토류를 12종으로 늘리는 한편, 해외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에 자국 희토류가 0.1%라도 포함됐으면 12월부터 자국 상무부의 수출 허가를 받도록 하는 역외 수출통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도 이 문제였다.


 중국은 미국이 3년간 써온 수법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돌려주려고 했다. 미국 기술이 들어간 제품은 어디서 만들든지 미국이 통제한다는 수법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제조사 ASML이 만든 극자외선 노광장비가 안성맞춤인 사례다. 반도체 회로 패턴을 실리콘 웨이퍼에 새기는 이 장비는 7나노미터 이하 첨단 반도체를 만들려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인텔이나 삼성, TSMC 같은 반도체회사는 ASML 장비 없이는 최첨단 칩을 만들 수 없다. ASML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계 안에 미국산 부품이 들어가는 게 문제다. 미국은 이를 근거로 ASML이 중국에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팔려면 미국 허가를 받으라고 했다. 네덜란드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지만 미국은 밀어붙였다. ASML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막으면 중국 첨단 반도체 산업이 사실상 멈추기 때문이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에서 미국과 똑같은 논리를 들이댔다. 

                                                                               


 미·중 무역 전쟁의 휴전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앞으로 두 나라는 자국의 최대 취약점을 없애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희토류 공급망 구축이 최우선 과제이고, 중국은 반도체 자급자족이 선결과제다. 미국은 호주, 일본과 희토류 협정을 체결하고, 한편으로는 자국 생산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기술기업과 희토류 생산·재활용 업체를 자립형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정상회담은 서로 만족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으나 전문가들과 세계 언론은 시진핑의 판정승으로 평가한다. 세계 무대에서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강대국으로 맞서야 한다는 시진핑의 목표와 부합한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은 일련의 무역갈등을 통해 미국과 대등한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시진핑이 목표인 시간벌기에도 성공했다는 의미도 담겼다. 중국은 미국과 벌이는 무역 전쟁에서 당장 이기기보다 미·중 관계를 관리하면서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을 버는 전략적 교착 상태를 바란다. 미국의 압력을 잠재우고 지속적인 디플레이션 압력, 높은 실업률, 내수 부진 같은 국내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중국 내부에선 부산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가 미국 독주 시대를 끝내고 실질적인 ‘G2 시대’를 알린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트럼프의 내년 4월 중국 방문 약속도 시 주석에겐 큰 정치적 선물로 평가된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