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인구소멸 문제로 나라가 새해 벽두부터 호떡집에 불난 듯하다. 대통령과 언론은 새해 당면 과제로 저출생 문제를 꼽았고, 덩달아 정부와 정치권도 새삼스레 부산을 떨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저출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여야 대표는 공교롭게도 지난주 같은 날(18일) 저출산 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나라 밖 전문가와 오피니언 리더가 한국 저출생의 경보음을 울리고서야 발등의 불로 여기는 모습이다. 지난 연말 뉴욕타임스에 역대 세계 최저로 감소한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흑사병 창궐로 인구가 급감한 14세기 중세 유럽에 비유하는 칼럼이 실려 국내에 충격파를 가중시켰다. 다른 외국 전문가들도 ‘한국 소멸’ 같은 섬뜩한 경고를 잇달아 보냈다.
20여년 전부터 위험신호인 회색코뿔소가 달려오고 있음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상투적인 대응만 해왔다. 아이 한명 낳으면 돈(양육비)을 얼마씩 준다는 식이다. 정부가 저출산 예산을 처음 편성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400조원이 넘는 돈을 들였지만 출산율이 반등하기는커녕 끊임없이 추락했다. 2022년 0.78명이라는 출산율 세계 최저신기록은 올해 0.6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그동안 저출생 해법에 관한 온갖 의견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사회의 과도한 경쟁시스템을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기실 한국의 출산·육아지원 정책이 다른 주요국들보다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저출생 문제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여성 차별과 홀대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한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한국에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아직 여성가족부를 없애겠다는 공약에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으나 마나 한 장관을 방치하는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다. 청년세대 남녀를 갈라치기 하는 듯한 언행과 정책은 선거의 표 계산만 한다는 인상을 준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여성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성차별적인 사회·경제적 환경에 대한 불만이다. 지난해 1~11월의 통계청 경제활동인구(30~54세) 조사 결과 고학력 여성일수록 결혼 비율이 낮았다. 고학력 여성의 미혼율은 28%에 이른다. 저학력 여성의 미혼율도 16%다. 결혼 기피 이유가 출산을 위해 경제활동을 포기하거나 불이익을 받는 상황 때문이라는 응답이 지배적이다. 과거처럼 ‘현모양처’나 자식을 위한 엄마의 희생정신을 기대하는 시대는 지났다.
출산 적령기 30대 여성고용률은 남성보다 25%p나 낮고 비정규직 비율은 높다. 세계경제포럼의 성 격차지수(GGI)에서 한국은 146개국 중 105위를 차지했다.(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31.1%로 조사국가 가운데 가장 크다.(2021년 기준)
내일신문 1월 19일 자 머리기사를 보면 ‘육아휴직자에게 승진 불이익 주는 기업’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조차 10곳 중 4곳은 육아휴직자에게 승진 불이익을 준다. 일·가정 양립을 통해 아이를 키우고 직장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 게 저출생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인데도 이처럼 구조적 차별이 엄존한다.
지난해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면서 한국 사회의 남녀 불평등과 직업환경에서의 차별을 꼬집었다. 이를 한국 여성의 ‘출산 파업’이라고 표현했다. 명저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도 한국 사회의 성차별 문제를 지목했다. 올해 초 국회 입법조사처의 ‘20~30대 여성의 고용·출산 보장을 위한 정책방향’ 보고서 역시 성평등 노동시장개혁과 여성 고용의 안정을 출생률 반전의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북유럽의 복지선진국 노르웨이도 1970년대 심각한 저출생을 겪다가 양성평등지수 세계 2위로 올라서며 출산율이 늘었다. 스웨덴은 여성·아동의 권리와 보편적인 삶의 질을 확보하는 데 힘을 쏟아 저출생 극복에 성공했다.
성평등이 저출생 문제의 만능 해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성평등 관점이 빠진 저출생 정책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솔직히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여성의 의지에 달렸지 않은가.
이 글은 내일신문 시론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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