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역사서의 근간인 ‘사기’를 쓴 사마천은 춘추필법을 따랐다. 춘추필법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대의명분을 좇아 준엄하게 기록하는 논법이다. ‘춘추’를 지은 공자의 역사서 집필 방식이다. 공자는 역사를 기술하면서 정명(正名)관에 따라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공과와 시비를 명백히 가려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선왕의 업적을 평가할 때 이 원칙을 예외없이 지켰다. 사마천은 춘추의 의리가 행해지자 천하의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했다고 평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계기로 윤석열정권과 보수진영의 이승만 띄우기가 도를 넘었다. 춘추필법은커녕 상궤를 이탈해도 한참 벗어났다. 윤 대통령은 영화 관람 후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김영호 통일부장관,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을 비롯한 상당수 정부·여당 인사들이 연일 영화관을 찾아 인증사진을 남기고 이승만 재평가 메시지를 던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경복궁 옆 송현광장 알짜배기 땅에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심각한 문제는 명백한 ‘과(過)’마저 감추거나 왜곡하고, ‘공(功)’으로 둔갑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씻을 수 없는 죄과는 대한민국의 근간인 민주주의를 짓밟고 파괴한 독재자라는 사실이다. 헌법 전문에도 명시된 4·19혁명은 이승만의 가장 큰 과오를 상징한다.
영화 ‘건국전쟁’은 4.19혁명의 원인을 이승만이 아니라 이기붕 부통령과 집권 자유당 탓으로 돌린다. 게다가 이승만이 단지 장기집권했을 뿐이지 독재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이승만 스스로 장기집권을 위해 헌법을 두차례나 뜯어고쳤다. 그것도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사사오입개헌(四捨五入改憲)까지 했다. 이를 토대로 이승만은 삼선 대통령의 뜻을 이뤘고 마침내 3.15 부정선거로 4선까지 했다.
독재정치를 하다 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을 영웅적인 인물로 숭앙하자는 주장은 실정(失政)으로 프랑스혁명의 원흉이 된 루이 16세를 위대한 왕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름없다. 루이 16세는 프랑스 혁명으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이승만을 추앙하기 위해 4·19혁명을 왜곡하는 것은 헌법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유별나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헌법정신을 강조하는 윤 대통령이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국민이 윤석열정권에 선거로 권한을 위임했다고 마음대로 역사를 재단할 권한까지 주지 않았다.
박민식 전 보훈부장관은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국의 ‘건국의 아버지’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보면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과 같이 국부로 모시는 파운딩 파더스가 있다면서.
이승만을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 독립군 최고사령관이었던 워싱턴은 4년 중임의 임기가 끝나고 주변으로부터 ‘선출된 왕’인 종신 대통령이 되어 달라는 권유와 압박을 받았지만 단호하게 물리쳤다.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그렇게 마련됐다. 워싱턴의 재선 후 퇴임은 미국 역사에서 불문율로 자리잡았다. 그에 따라 워싱턴과 더불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로 불리는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같은 지도자들이 차례로 선출 대통령을 맡는 모범적 민주주의가 정착됐다.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들’인 경쟁자들을 저열하게 제거했다. 농지개혁의 주역인 조봉암 농림부장관이 대선 경쟁자로 떠오르자 사법살인했다. 조봉암은 52년 후에야 재심에서 무죄로 명예를 회복했다.
영화는 이승만 정권 후반에 입안된 3개년 경제계획을 박정희가 완성했다고 견강부회한다. 이승만의 ‘경제 3개년 계획’은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는 전혀 다르다. 뜻깊은 농지개혁은 이승만의 공로만 평가할 수 없다. 농지개혁 모델은 공산주의를 우려한 미국 군정기에 상당 부분 마련됐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한국이 공산화했을 것이라는 개신교 측의 가정법적 주장은 더욱더 가관이다. 이 밖에 친일파 청산 실패,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사건, 보도연맹 학살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6·25 전쟁 당시 다리 폭파로 민간인 피해를 키운 일 등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독도를 대한민국 영토로 만든 평화선(이승만 라인) 설정 같은 외교 업적은 인정받아야 한다. 이승만을 평가할 때 흔히 듣는 말이 ‘외교에는 귀신, 내정에는 등신’(고 김상협 고려대 총장)이다. 여기에 ‘인사에는 병신(비속어지만)’이 덧붙여져 삼신 대통령으로 불렸다. 귀신같은 외교로 나라를 세우고, 등신·병신같은 정치와 인사로 나라를 망쳤다는 뜻이다. 이보다 명쾌한 평가는 없어 보인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이승만 평전’에서 “이승만의 수많은 잘못, 반민족·비민주적 행적은 그의 업적을 덮고도 남는다”라고 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권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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