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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진심’ 교환의 원칙

입력 : 2008-05-23 17:31:36수정 : 2008-05-23 17:41:27

‘마음의 창’에는 네 가지 영역이 존재한다.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아는 ‘열린 창(open area)’, 나는 알고 있지만 상대방은 모르는 ‘숨겨진 창(hidden area)’, 나는 모르지만 상대방은 쉽게 나를 관찰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창(blind area)’, 나도 상대방도 모두 알지 못하는 ‘미지의 창(unknown area)’이 그것이다. 심리학의 의사소통이론 가운데 ‘조하리의 창’(Johari Window)이란 학설이다. 창안한 두 심리학자 조지프 루프트와 해리 잉햄의 이름을 딴 이 분석틀은 나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가 어떤 상태인지를 설명하는데 매우 유용한 방법론이다.

사람에 따라 그 창의 크기는 서로 다르다. 각 영역이 고정돼 있지 않고 개인의 삶 속에서 변하는 것은 물론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고 속 깊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숨겨진 영역은 시나브로 줄어들고 열린 공간은 늘어난다. 상대방과 내가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지면 그만큼 친밀해진다. 이렇듯 ‘소통(Communication)’은 라틴어 ‘Communicare’에서 유래된 그대로 상대방과 무엇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다.

김정탁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서양의 의사소통을 ‘논문’, 동양의 의사소통은 ‘시’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는 서양 커뮤니케이션메시지나 텍스트 분석이 대상인 데 비해 동양의 의사소통은 말은 물론 몸짓과 그 말이 행해진 상황도 더불어 분석돼야 한다는 견해를 편다. 기능적인 원리를 중시하는 서양의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한국의 의사소통은 달라야 한다는 게 요체다. 서양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명료성과 객관성에 지배돼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모든 사물과 대상을 이항대립적인 관계로 인식한다. 이에 반해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의사소통 이론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조화로 파악한다. 유가(儒家)의 입상진의(立像盡意·형상을 세워 뜻을 전한다), 불가의 불립문자(不立文字·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는다), 도가의 언어도단(言語道斷·언어는 도를 해칠 수 있다)이 이를 표징한다.

요즘 새롭게 상종가를 누리는 한 정신분석학자도 ‘한국인의 소통’을 이와 흡사한 맥락에서 접근한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소통의 기술’(미루나무)에서 서양에서는 명확하게 자기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소통의 제1원칙이지만 한국에서는 그걸 따라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점을 중요한 차이로 든다. 한국적 정서에서는 말하는 내용 못지않게 말투나 어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직설적이고 확신적인 어법을 즐기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이 책은 제목에서 풍기는, 진심이 통하는 관계를 만드는 기술이나 방법보다는 관계를 맺는 소통의 원칙을 강조한다. 답답하고 막막할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함의다. 1979년 38살에 요절한 하길종 영화감독의 아들이기도 한지은이는 무엇보다 ‘설득을 위한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득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비법이라고 독자를 설득한다. 국민과의 소통 부족을 심각하게 고백한 이명박 정부가 흘려듣지 말아야 할 대목 가운데 하나다.

저자는 정보의 정확성이 아니라 진심이 오갔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인간은 소통의 만족감을 느끼는 존재라는 데 ‘굵고 푸른 글씨로’ 주의력을 상기시키고 있다. 테크놀로지와 소통 수단의 획기적인 발전이 도리어 소통의 장애물이 되는 현대의 역설을 규명해 주는 듯하다.

개인간의 소통에서도 2 대 8의 파레토 법칙을 적용할 것을 지은이는 각별히 주문한다. 2분 말하고 8분을 듣는 ‘경청’의 자세는 말은 쉽지만 실행하긴 어려운 원칙이다. 소통은 한 번 하고 끝나는 단기전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지는 리그전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권면사항도 담겼다. 그렇잖아도 다른 나라에 비해 전반적으로 ‘의사소통지수’가 낮은 것으로 드러난 최근의 연구 결과가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소통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하는 하수상한 시절에 떠올려 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