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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인종의 우열은 없다 단지 환경이 다를 뿐

입력 : 2008-05-02 17:23:49수정 : 2008-05-02 17:23:55


‘전작주의’란 신조어를 만든 애서가 조희봉은 존경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소설가 이윤기를 주례로 모실 정도였다. 조희봉은 이윤기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저서와 번역서를 모두 읽고 소중히 보관하는 정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전작주의란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모아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해냄으로써 그 작가와 작품 세계를 온전히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전작주의자의 꿈-어느 헌책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함께읽는책)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전작이란 어느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의미를 좀더 확장시켜 보면 그 작품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다른 작품들까지도 포괄한다. 만약 어느 한 사람의 작품 속에만 매몰되어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옳은 의미에서의 전작주의자의 길이 될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나 저자의 모든 책을 읽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그것은 독서의 폭과 깊이를 확충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모든 독자들이 나름대로 전작주의로 접근해 보고 싶은 대상은 수없이 다양할 것이다. 황석영, 조정래, 이문열, 이청준, 리영희, 강준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움베르토 에코, 베르나르 베르베르, 시오노 나나미, 노엄 촘스키 등등.

전작주의 대상은 주로 문학이나 사회과학이 되기 쉽겠지만 자연과학도 예외일 순 없을 것 같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역시 전작주의의 대상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탁견을 지닌 세계적인 자연과학자이면서도 글을 쉽게 쓰는 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생리학자인 그는 생태학, 생물지리학, 진화생물학, 인류학 등 연구 영역을 끝간 데 없이 확장하는 ‘통섭(統攝)’의 학자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주요 저서만 해도 어느덧 ‘섹스의 진화’(사이언스북스), ‘제3의 침팬지’(문학사상사), ‘총·균·쇠’(문학사상사), ‘문명의 붕괴’(김영사) 등 네 권에 이른다.

이 가운데 특이한 제목의 ‘총·균·쇠’는 다이아몬드에게 퓰리처상을 안긴 대표작이다. 자연과학자의 시각으로 인류 문명의 불평등 원인을 규명한 역작이다. 어떤 민족은 지배하게 되었으며 어떤 민족은 지배받아야만 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새로운 해답인 셈이다.

지은이는 751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는 주문을 예상해 이런 말을 준비했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선사시대 이후 유·불리한 환경에 살게 된 ‘우연성’이 지금의 문명 우열을 낳았다는 게 그의 견해다. 그 과정에서 무기, 병균, 금속 등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신선한 학설을 도출한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인류문명 불평등에 대한 잘못된 인식 깨기’이다. 저자의 뛰어난 안목과 역량이 외경스럽다.

개정 신판에는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추가 논문으로 한국인의 이주가 현대 일본인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입증해 더욱 눈길이 간다.

다이아몬드는 웬만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외국인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1994년 세계적인 과학잡지 ‘디스커버리’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 지식인들에게 설파한 바 있다. 그는 ‘제3의 침팬지’ 서문에서 “한글은 세계 언어 중 가장 과학적으로 짜여진 언어다. 또한 배우기 쉽고 익히기 쉬운 점에 있어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문자의 하나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인 입양아를 두고 있기도 하다.

‘총·균·쇠’는 의식적으로든 무심결이든 피부 색깔에 따라 현실적·심리적 차별을 서슴지 않는 한국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의 울림이 크다. 다민족 사회로 접어든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