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08-05-16 17:30:39수정 : 2008-05-16 17:30:43


5년 전쯤이었다. 죽어가던 팔레스타인 소년의 장기기증으로 세 명의 이스라엘 어린이가 새 생명을 찾는 감동적인 일이 벌어졌다. 13살난 소년이 지붕에서 떨어져 뇌사판정을 받자 소년의 어머니가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미국 메릴랜드대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출신 교수가 곡절을 겪으며 10년 넘게 한 강의실에서 나란히 강의를 해 눈길을 끈 일도 있었다. 그것도 ‘중동의 분쟁 관리’라는 민감한 주제였다. 오로지 갈등과 증오, 유혈이 낭자한 공격과 보복만이 존재하는 두 민족에겐 찾아보기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삶의 현장은 대부분 엄혹하기 이를 데 없다. 올 들어 가자지구에서만 3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군의 무차별한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지난 3년간의 사망자보다 많은 숫자다. 희생자의 3분의 2인 197명은 어린이 44명과 여성 14명이 포함한 민간인이었다. 이스라엘에서는 같은 기간에 군인 5명과 민간인 4명만이 숨졌다.

이런 현실은 두 나라 사람들이 서로 마주하는 것조차 꺼리게 한다. 그러기를 어언 60년. 지난 14일은 이스라엘의 건국 60주년 기념일이었지만, 팔레스타인은 ‘알 나크바(대재앙의 날)’ 60주년을 애통한 마음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들은 2000년이 넘는 디아스포라(이산)를 끝낸 날인 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날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히브리 달력에 따라 60돌을 맞은 지난 8일부터 경축 행사를 시작하자 팔레스타인의 ‘알 나크바’ 60주년 행사도 같은 날 막을 올려 열흘 동안 열리고 있다. 팔레스타인에는 검은 깃발이 공공 기관과 집 밖에 내걸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왜곡의 역사로 점철돼 왔다. 국제 정치에서 특유의 강자 논리가 지배해온 탓이다. 노먼 핀켈슈타인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돌베개)을 보면 이를 절감한다. 이 책은 유대인 저자가 시오니즘 지식권력이 진실을 어떻게 왜곡해 왔는지 논증적으로 고발한 것이다. 핀켈슈타인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피해자 가족이어서 한층 더 설득력을 지닌다. 핀켈슈타인의 부모만 나치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 나왔을 뿐 나머지 친척 상당수가 홀로코스트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핀켈슈타인은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홀로코스트의 상업화를 비판하는 책을 쓰는 등 민족 내부의 불의를 꼼꼼하게 해부한 글로 징치(懲治)하고 있는 전문가다. 그의 정의로운 싸움은 노엄 촘스키의 영향은 물론 어머니에게도 영감을 짙게 받은 듯하다. “그 땅에서 태어났다는 것 말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슨 죄가 있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아들의 질문에 이처럼 주저 없이 대답한 어머니다.

핀켈슈타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추이를 따라가면서 진실에 대한 이미지 조작 과정을 파헤친다. 왜곡의 핵심에는 시오니스트 지식권력이 도사리고 있다고 집어낸다.

그가 파헤친 시오니스트 지식인들의 조작과 거짓말은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 난민이 된 상당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원래 그곳에 살지 않았고 근래에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의 학살과 추방이라는 사실은 부풀려진 이야기인 데다 의도된 것이 아니라 전쟁이 만들어낸 부산물일 뿐이다. 가자 지구나 웨스트 뱅크의 정착촌도 자발적인 이스라엘인들이 평화적으로 일궈낸 개척이지 정복과는 거리가 멀다. 6월 전쟁은 이집트의 나세르가 이스라엘을 자극한 결과이며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얻은 영토는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았다. 캠프 데이비드 협상에서 이스라엘이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했으나 팔레스타인이 이를 거부했다.

핀켈슈타인의 목소리 무게는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저명한 팔레스타인 지식인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동족 배신자라는 화살이 돌아온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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