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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美대통령 후보를 내기까지 쿤타킨테 후손들의 삶

입력 : 2008-06-06 17:15:52수정 : 2008-06-06 17:15:56

1619년 8월 하순 어느 날이었다. 한 척의 네덜란드 범선이 미국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우연히 상륙했다. 102명의 영국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 항에 도착하기 1년여 전의 일이었다. 제임스타운은 1607년 영국인들이 건설한 최초의 북아메리카 식민지였던 곳이다. 범선에는 3명의 여성을 포함해 20명의 흑인이 타고 있었다. 흑인들은 정착자들에게 물건처럼 분배됐다. 이들이 처음엔 노예상태는 아니었지만 계약 하인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낯선 땅으로 끌려온 흑인들은 1662년부터 버지니아 법이 ‘노예’라는 낱말을 공식으로 사용함에 따라 오랫동안 관습으로 내려오던 노예제의 사슬에 합법적으로 묶였다. 미국 땅에서 아프리카 흑인들의 슬픈 노예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 뒤 근 4세기 동안 1200만~1500만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화물마냥 배 밑창에 실려 대서양을 건너 운송됐다. 흑인 노예들은 애절한 흑인영가로 조금이나마 한을 달래며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결단으로 140여년 전에 이미 법적인 노예해방이 이뤄졌지만 인종차별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나 다름없다. 흑인들의 역사는 마침내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확정으로 새로 쓰이기에 이르렀다. 미국 건국 232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의 탄생 가능성을 연 것만으로도 거대한 변화의 도정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벤자민 콸스의 ‘미국흑인사(백산서당)’는 이러한 미국 흑인들의 애달픈 역정을 흑인 역사가의 손으로 쓴 최고의 저작이다. 이 책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는 역사가 없단 말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흑인들이 미국 땅으로 유입될 초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족적을 총정리하는 대중적 역사개설서에 해당한다. 한국어로 번역된 거의 유일한 정통 미국 흑인역사서이기도 하다.

저자가 흑인 역사학자라고 해서 감정이 듬뿍 배였거나 격앙된 목소리는 찾아 볼 수 없다. 백인들이 노예제도를 신의 섭리라고 주입시키는 종교교육조차 담담한 어조로 사실만 지적한다. “누가 너희에게 주인을 보내주셨는가?” “하느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네가 주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누가 말씀하셨는가?”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노예제도가 있을 당시 소수의 비노예 자유흑인과 극소수의 부자 흑인들의 존재 같은 것도 숨기지 않고 기술하는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1968년 봄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으로 완전평등을 위한 민권투쟁이 퇴보하는 애환과 1970년대 이후 정치참여, 경제자립을 위한 투쟁, 자기 가치에 대한 인식 고양 등 흑인들의 지평을 넓혀가는 시기로 책은 마무리된다.

지은이 콸스는 학계의 뿌리 깊은 편견을 뛰어넘어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미국사에서 ‘흑인 바로세우기’를 위해 일생을 보낸 뒤 1999년 이 세상과 하직했다. 그는 미국에서 흑인의 역사를 특수사로 보지말고 미국사 주류 속에서 역할과 의의가 제대로 해석되길 기대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드렉셀대의 V P 프랭클린 교수는 콸스가 흑인들의 역할이 무시될 뿐만 아니라 그 존재를 ‘문제’로만 규명하던 당대의 미국 역사학 풍토를 바로잡는 데 학자로서의 삶을 바쳤다고 숭앙한다.

이 책은 자유와 인권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라는 뼈저리면서도 범상한 교훈이 온전히 담긴 거울임에 분명하다. 오바마가 외치는 ‘변화’라는 구호에 지지자들이 “그래, 우리는 할 수 있어”라고 화답하는 함성에서도 이 책의 정신은 현현한다. 오바마의 민주당 경선 승리만으로 인종차별을 극복했다고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독립전쟁, 노예해방에 이어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는 세계사적 흐름이라는 평가에도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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