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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이로쿼이족의 7세대 원칙

 미국 뉴욕주에 살았던 원주민 이로쿼이 부족 연맹은 중요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7세대 후손을 기준으로 삼았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으면 7세대는 210년이다. 먼 장래를 내다보는 계획을 일컫는 백년대계와 비교해도 차원이 다르다. 지금의 결정이 향후 7세대 후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7세대 원칙’(Seventh Generation Principle)은 이로쿼이 연맹의 독특한 지혜로 회자한다.


 이로쿼이 연맹 헌법은 미국 헌법에 지대한 철학적 영향을 미쳤다.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미국 헌법의 무계급사회 개념은 유럽에서 유입됐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이로쿼이에서 본떴다고 한다. 이로쿼이 헌법은 남녀노소, 지위고하, 심지어 동식물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의 평등을 주창한 게 특징 가운데 하나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과 벤저민 프랭클린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 선출된 대표를 갖는 것이 이로쿼이족의 민주정부 모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록에 썼다. 특히 프랭클린은 이로쿼이족 특유의 ‘공동주택’에 오래 머물면서 이들의 생활상에 감명을 받아 미국 헌법을 만들 때 참고했다고 한다. 미국이 여러 주를 연합한다는 발상도 모호크 카유가 세네카 오네이다 오논다가 투스카로라 등 6개 부족으로 이뤄진 이로쿼이 연맹으로부터 빌려왔다고 미국 독립의 아버지들은 기록했다. 이로쿼이가 연맹이었기 때문에 이를 잘 운영하려면 지혜로운 규율과 법이 필요했다.

                                                                     


 이로쿼이 연맹은 믿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정치체제를 지녔다. 부족 전체 일을 관장하는 평의회, 부족들의 연맹을 관장하는 대의회가 존재했다. 의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민주적인 절차로 뽑혔다. 모계사회인 이 부족은 남성 추장 해임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여성이 가졌다. 정치는 남성들이 했지만 거부권과 탄핵권은 여성들이 가진 셈이다. 연맹에는 여성과 남성, 2개의 젠더가 아니라 3~5개의 젠더가 있었다고 한다.


 이로쿼이 정신에 비하면 한국의 현실은 미래세대에 빚 남기기와 짐 떠넘기기 경쟁을 하는 듯하다. 임기 5년의 정권쟁취와 지키기만 골몰하는 게 한국 정치권의 참모습 같다. 21대 총선에서 돈의 위력을 실감한 여야가 너나없이 돈 쓸 일만 궁리하고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나랏빚 문제는 그리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외려 국가채무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건전하다면서 더 많이 쓰는 걸 부추긴다.


 일찍이 지자체 단체장들이 제기했고 총선에서 참패한 보수야당이 맞장구치는 기본소득 논의는 언젠가는 검토해야 할 정책이긴 하다. 하지만 돈이 나올 곳에 관한 얘기는 전혀 없다. 국민 주머니에서 나올 세금을 대폭 올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보다 더 잘사는 선진국들이 몰라서 먼저 도입하지 않는 건 아니다. 세금인상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도 없다. 미국의 조지 W.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어떤 형태의 증세도 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가 이를 어겨 흔치 않게 재선에 실패하고 말았다.

                                                                              


 7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는 한국의 구조적 재정수지가 그리스에 이어 두번째로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는 경종을 울렸다. 한 나라의 재정건전성을 측정하는 관리재정수지도 2001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역대 최대 적자 규모인 112조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불가피한 면이 있으나 효율적인 나랏돈 쓰기가 절실함을 보여준다.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공무원·군인연금 부채만 해도 정권마다 폭탄 돌리기에만 급급할 뿐 미래세대의 부담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불과 4년 만에 200조원 넘게 불어나 940조원을 넘어섰으나 선거 표 계산에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과 반비례해 공무원·군인연금 지급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2022년까지 공무원 17만4000명이 증원되면 설상가상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자신의 임기 중이나 다음 선거 때까지만 국민의 환심을 사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세대에 빚을 무더기로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죄를 짓는 일이다. 무슨 일을 하든 210년 뒤의 후손들에게 피해가 될지를 먼저 생각했다는 이로쿼이 부족의 혜안을 몇분의 일만 생각해도 좋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