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대학교가 있는 미국 앤아버에는 ‘실패박물관’이라는 이색적인 공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식 명칭이 ‘신제품 작업소(New Product Works)’인 이 박물관에 전시 중인 13만 점 이상의 실패 상품을 보러 기업경영인들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 찾아온다. 다양한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1990년 설립된 이곳에는 마케팅 전문가이자 실패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로버트 맥매스가 40년 넘게 수집한 소비자 외면 제품이 가득하다. 미국에는 해마다 3만 개 이상의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80~90%가 곧 사라진다고 한다.
미국의 조직심리학자이자 혁신 연구가인 새뮤얼 웨스트는 2017년과 2018년에 스웨덴 남부도시 헬싱보리와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 실패박물관(Museum of Failure)을 잇달아 열었다. 여기에는 플라스틱 자전거, 할리 데이비슨 향수, 초록색 케첩을 비롯한 100여 개의 실패작이 전시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2009년 ‘실패 콘퍼런스(FailCon)’가 처음 열렸다. 실패 콘퍼런스는 그 뒤 이스라엘 텔아비브,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도 벵갈루루, 프랑스 툴루즈 등지로 퍼졌다. 핀란드에서는 해마다 10월13일 ‘실패의 날’ 행사가 열린다. 하타무라 요타로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가 21세기 초 ‘실패학’을 창시한 이후 한국 대학에서는 한동안 실패학 강의 바람이 불기도 했다.
적폐청산을 첫손가락에 꼽은 문재인 정부는 세계 최초의 ‘실패박람회’를 2018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었다. 2019년에는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4개 권역으로 넓혔다. 다양한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실패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 재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는다는 게 행사 취지다.
그런 문재인 정부가 직전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다.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인 권력 감시와 부정부패방지 의무를 지닌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의 실패는 상당 부분이 평행이론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무한신뢰를 받은 민정수석 자신의 비리 의혹, 감찰 실패, 비리 적발 이후 대응방법은 하나같이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정권의 위상을 결정적으로 훼손한 점에서도 비슷하다. 우병우 전 수석과 조국 전 수석의 개인 비리 존재 외에도 민정수석의 직무 의무, 감찰 개시의 정황·조건은 손바닥을 앞뒤로 뒤집은 정도의 차이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살아 있는 권력의 잘못을 수사하는 검찰을 윽박지르고 수사팀을 해체하는 모습도 흡사하다. 검찰개혁 명분을 감안하더라도 검찰을 무력화하고 수사를 가로막는 방법에서는 현 정부가 더 엄혹하다는 평가조차 나온다.
불과 얼마 전 실패의 실상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비판까지 했던 촛불 정권이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까닭을 납득하기 힘들지만, 드러나는 행태에서 유추해 볼 여지는 있을 것 같다. 우선 적폐 정권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는 촛불 정권에게 이 정도의 비리와 불법은 그리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인식이 자락에 깔린 게 아닌가 싶다. 심리학에서 ‘도덕적 면허효과(moral licensing effect)’로 일컬어지는 현상이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시위 구호가 “박근혜 무죄!”이듯 서초동 시위대가 “조국·정경심 무죄!”를 외치는 것도 이러한 심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흔히 들먹이는 ‘내로남불’의 이중잣대도 작용하는 듯하다. 이와 더불어 ‘우리 정권과 나에게서는 이런 종류의 비리와 불법이 결코 탄로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엿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권력 비리가 그랬듯이 이번에도 내부에서 불거져 나왔다. 살아 있는 권력이 애써 막아서더라도 정권이 끝나면 어김없이 단죄가 뒤따른다는 걸 잊고 싶어 하는 모습 같다.
실패학의 하타무라 교수는 ‘필요한 실패’와 ‘있어서는 안 될 실패’를 분명히 나눈다. ‘필요한 실패’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것이고, ‘있어서는 안 될 실패’는 알면서도 자만심과 부주의로 반복하는 실패를 말한다. 모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는 아니라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 답습은 ‘있어선 안 될 실패’의 전형이다. 맥매스 역시 ‘큰 실패보다 실패의 반복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실패는 감출수록 커지고 드러내면 성공과 창조를 가져온다”는 하타무라 교수의 덧붙이는 고언은 문재인 정부에 한결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세상톺아보기-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벽과 잘코사니를 넘어 (0) | 2020.03.25 |
---|---|
협량 정치에 광적 팬덤까지 (0) | 2020.03.25 |
호르무즈 파병과 광해군의 지혜 (0) | 2020.01.22 |
새해 벽두부터 심상찮은 지구촌 전조 (0) | 2020.01.11 |
세계 최초·최고를 썩힌 한국인의 역사 (0) | 2019.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