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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일본이란 이름의 굴레와 멍에

  ‘세계화 전도사’로 불리는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냉전시절 일본이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 체제에 훨씬 더 가깝다고 평했다. 프리드먼은 명저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자민당 치하의 일본이 엘리트 관료가 경제자원 배분문제까지 결정해 노멘클라투라 체제의 소련 공산주의나 다름없다고 했다. 실제로 소련 학자들이 일본을 둘러보고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 출신의 저명한 IT 칼럼니스트 월트 모스버그도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산주의 국가였다’는 말을 즐겨썼다.


 프리드먼은 여기에다 일본 언론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온순해 본질적으로 정부 지침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는 일본 국민 역시 지독하게 획일주의에 순응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일본판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고 표현했다. 일본에서는 획일적 모델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창가족’라는 딱지를 붙여 알게 모르게 차별했다. ‘창가족’은 창문을 내다보는 책상에 앉혀 따돌린다는 의미를 지녔다.


 일본 작가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이를 일본 특유의 ‘공기(空氣)’론으로 설명한다. 일본 사회와 조직이 논리나 합리적 근거가 아니라 ‘공기’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는 의미다. 일본에서 ‘공기’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는 물론 이불 속까지 파고들어 절대적인 구속력을 발휘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런 일본 국민의 성향을 교묘하게 이용해 장기집권을 구가하고 있다. 그는 일본의 혐한 ‘공기’를 팽배하게 만들어 정치적 무기로 삼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일본인의 한국 호감도는 사상 최저로 나타났다. 아베 정권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수출규제 강화에 더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 대상국에서 제외해 1112개 핵심 부품·소재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확대하려는 시도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 수법을 한국에 그대로 써먹는 아베는 외교적 사안을 무역으로 보복하는 경제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 경제산업성 간부는 지난주 문재인 정부가 계속되는 한 규제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을 정도다. 아베 정권의 속내가 ‘타도 문재인’임을 분명하게 표출했다. 일본은 자신들도 피해를 입는 ‘자해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한국을 손보겠다고 나선 것은 과거의 침략적 망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파기,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명분에 지나지 않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숙명적으로 일본이라는 굴레와 멍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굴레는 소나 말이 한번 쓰면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고, 멍에는 일을 할 때만 쓰는 것이어서 해방될 수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일본과 영구히 떨어질 수 없는 굴레가 씌었다. 하지만 경제적 예속이라는 멍에는 노력하면 벗을 수 있다. 1965년 한일협정을 체결하고 처음으로 교역을 시작한 이래 2018년까지 54년간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총액은 708조원에 이른다. 한국은 단 한 차례도 대일 무역수지 적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한국은 소재·부품 기술력을 일본에 의존한 채 첨단산업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 일본보다 나은 나라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반일(反日)’을 넘어서는 ‘극일(克日)’을 선언한 이래 한국은 여전히 일본의 경제적 종속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독도영유권 주장과 역사왜곡 망언은 사실과 원칙, 명분의 문제지만, 경제 문제에는 사활이 걸렸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실망스럽지만, 아베 정권이 한국의 굴복을 명확한 목표로 내세운 만큼 유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나쁜 선례를 남길수록 일본은 한국을 얕잡아 보고 기회 있을 때마다 길들이려 나설 게 분명하다.


 국면을 냉철하게 관찰하면 단기적인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위기를 기회로 삼을 때다. 기업들은 치열한 첨단기술 개발 노력보다 일본 첨단부품 수입에 의존해 쉽게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정부와 대기업이 우리 기술, 우리 중소기업을 키워내는 노력을 게을리 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외교적 노력을 동반하면서도 차분하고 비상한 각오로 응전에 나서야 일본의 오만을 깨부술 수 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