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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다시 빨라진 북한 비핵화 시계

 북한 비핵화 시계가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뉴욕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플러스 알파를 확인한 뒤 교착상태에 빠졌던 협상의 재개 의사를 흔쾌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세계적 관심사인 2차 북미정상회담은 가시권에 들어왔다. ‘조만간’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시기와 장소 결정만 남아 있다는 미국 측의 언급을 보면 긍정적인 신호임에 틀림없다.


 미국과 북한은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이미 다양한 채널 간의 협의를 예고했다. 뉴욕을 방문 중인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이 유엔본부에서 만나는 데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미국의 스티브 비건 대북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의 세부적인 조율이 이뤄진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한 미공개 메시지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내용을 미국이 꼼꼼하게 점검하는 절차가 필요해서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는 핵시설의 순차적인 폐기와 검증 가능한 핵사찰을 수용하겠다는 의사가 확실하게 담겼다고 폼페이오 장관이 확인해줬다. 폼페이오 장관의 북한 방문도 다시 추진된다.


 2차 북미정상회담 시기도 미국 측이 먼저 언급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창건기념일인 10월 10일을 지나 10월 중·하순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10월 이후가 될 가능성이 더 많음을 내비쳤다. 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가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이 열세에 놓여 있는 중간 선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미국이 서두를 이유가 없어서인 듯하다. 미국 중간선거일인 11월 7일 이전이라면 북한이 내놓을 카드가 미국 중간선거에 확실한 호재가 될 만큼 만족스러워야 한다. 

                                                                                     


 대외 정책에 영향력이 큰 미국 의회와 싱크탱크, 언론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뿌리 깊다. 미국 의회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는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미 행정부 안에서도 비관론이 여전하다.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 24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쉽게 핵 프로그램 포기를 원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21년 1월) 내 완료라는 비핵화 시간표는 북미 양측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9월초 한국 특사단에게 이를 밝혔고, 미국도 비핵화까지 2년여 정도라면 적절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비핵화 완료 시점까지 주고받을 조치의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시간표 정리다.


 미국도 한반도 종전 선언을 비롯해 상응조치를 북한에게 구체적이고 가시적으로 약속해야함은 물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상응조치 시 영변 핵시설 영구폐기’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조건부 제안을 수용할지에 대한 대답은 아직 내놓지 않았다. 미국이 ‘상응조치’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협상 테이블에서 타결짓기 위한 신중한 행보로 여겨진다. 미국이 뉴욕 한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대외적으로 언급하기가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총회 기간 동안 미국은 대북 제재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회담까지 소집하고 있어서다. 섣불리 종전선언 카드를 내줘서는 안 된다는 미국 내 강경 여론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운명을 가를 중간선거를 앞두고 내부 리더십 균열로 지지율이 급락해 돌파구가 절실한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중간선거 이후 탄핵 국면에 접어들어 권좌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계산 아래 북한이 머뭇거리며 시간을 벌려고 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비핵화가 20%에 이르면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점이라고 트럼프가 생각한다는 사실을 김정은 위원장은 기억해야 한다. 비핵화가 완성되기 이전이라도 구체적 성과가 있다면 단계별 보상도 가능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는 특정한 시설들, 특정한 무기 시스템들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특정 무기 시스템은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는 화성-14·15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이동식 발사대 폐기를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객관적으로 보면 현재 국면은 미국에 유리한 게임이다. 경제발전과 정상국가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북한이 서두르고 미국이 다소 느긋한 모양새다. 북한이 속도를 내고 싶지만, 미국이 장애물 경기의 허들을 높여 놓은 꼴이다. 미국과 북한이 조건과 행동을 병행하는 게 합리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밝혔듯이 이제 핵 포기는 북한 내부에서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공식화됐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나란히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먼저 내리는 모험을 하긴 어렵다. 양측 모두 기존의 협상 문법을 잊고 비핵화와 안전보장을 통 크게 교환하는 거래가 이른 시일 안에 이뤄져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안에 한반도 평화를 정착한 지도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