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만큼 원칙주의자인 정치인도 드물다.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은 문 대통령이 ‘그냥 원칙주의자’가 아니라 ‘아주 깐깐한 원칙주의자’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자신도 원칙주의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문재인은 내가 아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며 “나도 두 손 들었다”고 할 정도였다. 문 대통령 스스로도 원칙주의자임을 자인한다. “원칙보다 강한 것은 없다. 원칙만큼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원칙주의는 지도자의 중요한 자산이자 덕목이다. 문 대통령에게 오늘이 있는 것도 원칙주의가 큰 몫을 했다. 문 대통령의 원칙주의는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국정철학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철학은 적폐청산에서 대표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모든 공약에 집착하는 듯한 원칙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은 도리어 아쉽다. 문재인 정부가 유독 경제문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모순되는 정책의 난립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아마추어들에게도 한눈에 보인다.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의 요구사항을 담은 선의의 정책들이 서로 물리고 물리며 갉아먹는 현상이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는 탓이다.
문 대통령 공약 가운데 일자리 창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일자리 상황판을 집무실에 들여놓았다. 매일 상황판을 체크하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후 1호 지시도 ‘일자리 위원회’ 구성이었다.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일자리’라는 단어를 40여 차례나 반복하면서 일자리 창출 추가경경예산안 통과의 화급함을 야당에 호소했다. 그 결과, 일자리 예산은 지금까지 54조원이나 썼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고용지표는 ‘고용 대참사’로 불릴 만큼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4대강 사업 22조원이면 연봉 2200만원 일자리 100만개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던 문 대통령이 무안해질만한 일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계층 간 소득격차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빈부격차 해소와 일자리 창출을 내걸고 집권한 문 대통령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게다가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 서민층과 청년들의 절망감을 부채질한다.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국의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정책이 실업자와 저소득층에게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을 정도다.
소득주도성장에 기초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개혁정책이 취지와는 달리 치명적인 역효과를 낳았지만, 문 대통령의 원칙은 꺾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25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한·외교안보문제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굴러가는 일이 없다는 아우성이 들리지만, 스스로 정한 원칙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으로 풀릴 문제를 정부가 고집을 부리며 온갖 엉뚱한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중국 마오쩌둥 주석의 참새잡기운동이 타산지석의 사례로 꼽힌다. 마오쩌둥은 1955년 농촌을 시찰하다가 참새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한 농민의 탄원을 받는다. 참새가 귀한 곡식을 쪼아 먹는 걸 보고 참새와 함께 쥐, 모기, 파리를 박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대적인 참새잡기운동으로 2억 마리를 없앴지만 다른 부작용이 나타났다.
참새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메뚜기가 폭발적으로 불어나 벼논을 온통 망가뜨려 버렸다. 메뚜기의 포식자 참새가 없어진 후과는 더욱 참혹해졌다. 곡식이 부족해 3년 사이에 4000만 명이 굶어죽었다. 혁명적인 마오쩌둥 정부는 메뚜기의 천적인 참새잡기운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문 대통령은 노자의 ‘도덕경’이 가르치는 ‘대직약굴(大直若屈)’을 떠올려 보면 좋을 듯하다. ‘대직약굴’은 아주 곧은길은 때로는 굽어보이는 법이라는 뜻이다. 이는 큰 원칙이 있는 사람은 작은 데서 원칙을 애써 고집하지 않는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굽히는 것 같지만, 큰 틀에서 보면 굽히는 게 아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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