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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아메리카 퍼스트’ vs ‘분발유위’

 미국 최초의 무역전쟁은 독립운동의 도화선이었다. 훗날 ‘보스턴 티파티’라는 다소 낭만적인 이름이 붙은 차 사건은 식민지 종주국 영국에 대한 관세저항으로 나타난, 첫 무역전쟁이나 다름없다. 국가 재정의 중추 가운데 하나이던 동인도회사의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영국은 1765년과 1767년 잇달아 새 관세조치인 ‘차(Tea) 조례’를 선포했다. 의회 대표가 없는 식민지에도 과세하기로 한 인지세법과 타운젠드법이 그것이다. 당시 미국인들에게 차는 비싼데다 섬유, 공산품 다음으로 많은 수입품이었다.


 ‘차 조례’를 악법으로 규정한 미국인들은 광범위한 반대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1773년 12월16일 저녁 보스턴 항구에서 한 무리 청년들이 떠들썩한 파티를 열고 과일주를 엄청나게 마셔댔다. 이들은 모두 아메리카 원주민 복장을 하고 있었다. 취기가 돌자 부두에 정박 중이던 영국 동인도회사의 무역선 세 척에 뛰어올라 340여 개에 이르는 차 상자를 모조리 바다에 던져버렸다. 영국정부가 이를 반역으로 간주하고 보스턴 항구를 폐쇄하는 강경 조치를 취하자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첫 무역전쟁으로 독립국가를 세운 미국은 세계 1위 자리가 위협받자 무력전쟁이 아닌 무역전쟁으로 수성하려는 의중을 드러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벌이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대규모 통상마찰을 넘어서는 세계 패권경쟁 차원으로 고조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트럼프의 막무가내 스타일로 보이지만, 정부 차원의 치밀한 계산 아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주말 (20일)중국산 제품 5000억 달러 전체에 관세를 부과할 준비가 돼 있다고 공언했다. 5000억 달러라면 지난해 미국이 수입한 중국산 제품 총액이다. 끝장을 보겠다는 무시무시한 발상이다. 트럼프는 242번째 독립기념일 이틀 뒤인 지난 6일 34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25퍼센트 관세 폭탄을 퍼부었다. 나흘 뒤인 10일에는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0퍼센트의 추가 관세 부과 절차에 들어갔다.


 전쟁은 어느 한쪽이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이기기 힘들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유소작위(有所作爲), 화평굴기(和平?起)를 넘어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한다)를 표방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맞대응에 나서 모두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의 보복을 각오하고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손실보다 이익이 크다는 자체 분석을 끝냈다는 뜻이다. 우선 수출액의 단순 비교에서 중국의 타격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상품수지 흑자는 무려 3700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의 중국 수출총액이 1300억 달러에 불과해 피해규모가 중국의 4분의 1수준이다. 중국의 일자리 가운데 대미수출을 통해 발생한 비율은 70대 1인 반면, 중국 수출에 의존하는 미국 일자리 비율은 140대 1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수출의존도가 큰 중국경제는 미국에 비해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경제의 기초 체력에서도 미국이 우위에 있다. 미국 경제는 호황이 지속되면서 각종 경제지표에 청신호가 켜졌다. 올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분기까지 3.7퍼센트를 웃돌 것으로 추계된다. 완전고용에 가까운 낮은 실업률과 기업경기 확대도 무역전쟁으로부터 미국을 지켜주는 방패막이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무역전쟁의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미다. 반면에 중국은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6.7퍼센트여서 4분기 만에 둔화된 것으로 집계됐다.


 미·중 무역전쟁에도 미국 증시는 비교적 평온한 편이지만, 중국 증시는 불안정하다. 중국에게 대규모 미국 국채 매도라는 무기가 있으나 미국의 무제한적인 통화 발행권을 감안하면 결정적인 위협이 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두 나라의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 미국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견해가 많긴 하다. 이 때문에 미국내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신흥강자 중국을 따돌리고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겠다는 트럼프의 결의는 중국과 통화전쟁까지 내비치는 데서도 분명히 엿보인다. 문제는 한국, 일본, 유럽연합 같은 전통적 동맹국에 유탄이 날아오고 있어서다. 무역전쟁에서는 대부분 패자만 존재한다는 역사적 교훈은 다른 목표를 지닌 트럼프의 미국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는 듯하다. <보스턴에서>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