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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진실은 끝내 순실을 이긴다

 태블릿 PC 하나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다. 꼭 일주일 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 카드를 꺼내들자 나라를 걱정하던 국민에겐 당혹감이 홍수처럼 몰려왔다. 야당들도 일순 허를 찔린 표정이 역력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은 이렇게 개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는가 싶었다. 진실은 끝내 묻히고 정의는 권력에 멱살이 잡혀 흐지부지되고 마는 게 아닌가, 가슴이 철렁했던 국민은 나뿐만 아니었으리라.


 친박계 사람들은 쾌재를 불렀다. ‘요건 몰랐지’ 하는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비박계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조차 “이 정권 출범한 이후 오늘이 제일 기쁜 날”이라고 했을까.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개헌도 자신들이 주도하겠다며 의기양양했다.


 그들의 내심 환호작약은 10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한 종편채널이 저녁 뉴스에서 회심의 ‘판도라 상자’를 열자 대한민국은 경악했다.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도 분노를 참지 못할 정도였다. 친박 사람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 순간부터 ‘개헌 블랙홀’이 아닌 ‘최순실 태풍’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렸다.

                                                                                     


 박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버리고 간 짐에서 찾아냈다는 태블릿 PC에 담긴 내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 ‘고구마 캐다 보니 무령왕릉 나왔다’는 이화여대생들의 우스갯소리 풍자가 현실로 나타났다. 200여개의 파일에는 단순히 대통령 연설문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정부 예산·외교·군사·남북관계·인사·경제에 이르기까지 최순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분야가 없었음을 방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쓰레기더미 속의 태블릿 PC는 정의의 무기로 돌변했다. 정의의 칼을 휘두르는 검찰이 해야 할 일을, 카메룬 언론인 이드리스 엔주타블이 ‘진실의 군대에서 근무하는 병사’라고 표현했던 기자가 대신했다. 지금까지 힘들게 오는 동안 검찰은 털끝만큼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외려 진실 규명 방해만 했을 뿐이다. 국정농단 핵심 혐의자들이 해외로 도피하고 문서를 파쇄해 증거를 없앨 시간을 벌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최순실 게이트’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하야를 몰고 온 ‘워터게이트 사건’과 닮은 점이 너무나 많다.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은 워터게이트 빌딩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한 괴한들이 경비원에게 체포되자 “유치한 삼류 절도사건”이라고 둘러댔다.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이 일자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유언비어’ ‘난무하는 비방’ ‘대기업의 자발적 모금’이라고 일축한 것과 흡사하다.

                                                                                     


 워터게이트의 괴한들이 카메라와 전자 도청장치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백악관은 거짓말 해명으로 일관하고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최순실의 대통령 연설문 수정 의혹 역시 “실소를 금할 수 없다”는 변명만 나왔다. 닉슨 대통령은 사건 은폐와 직접 관련됐다는 녹음테이프가 발견되자 항복을 선언하고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했다. 거짓말 하나 때문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그렇듯이 닉슨 하야도 수사기관이 아닌 언론이 집요하게 진실을 파헤친 성과물이다. 한국이 민주화를 쟁취한 일도 권력이 은폐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언론이 밝혀내면서 이룩한 것이다.


 박 대통령과 측근들은 최순실 게이트 의혹 이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단호히 부정하다가 거짓말의 꼬리가 밟히면 그 꼬리만 잘랐다. 황급하게 겉치레 사과를 했으나, 외려 국민의 화를 돋웠다. 철저한 진실규명 의지나 수사의지도 없었다. 닉슨이라면 당장 하야하고 넘치는 데도 말이다.

                                                                                     


 ‘진실은 감출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는 게 언론을 통해 입증됐음에도 청와대와 내각은 끊임없이 증거를 없애고 감추려 든다. “지금 청와대에선 증거가 사라지고 있다”는 한탄이 한 달 전부터 나왔다. 국민은 수많은 댓글을 통해 “증거 확보가 아닌 증거 인멸 시도” “빈집털이”라고 비판한다.

                                                                               
 청와대와 검찰이 은폐와 왜곡을 기도하더라도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게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명언 그대로다. “모든 사람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는 있다. 일부를 영원히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진실은 끝내 세상을 바꾸고 사악한 권력을 단죄하고야 말 것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