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체계의 제1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1덕목이다.’ 20세기의 위대한 저술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정의론’에서 존 론스가 정의의 위상을 규정한 대목이다. 이는 국가와 사회공동체에서 정의가 얼마나 긴요한지를 보여준다.
인류 최초로 정의론을 세운 플라톤 이래 정의에는 평등과 공정성이 핵심가치였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면 정의는 우리를 평등하게 하리라’는 명언도 그래서 나왔다. 상징물인 ‘정의의 여신상’에서 저울이 다툼을 공평하게 저울질하겠다는 형평성을 표상하고, 칼은 법을 위반했을 때 엄격하게 처벌하겠다는 강제성을 나타내며, 두 눈을 가리는 것은 사적인 감정이나 편견을 갖지 않고 판결을 내리겠다는 공정성을 의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군부독재의 굴레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이룬지 30년이 지났건만, 대한민국에서는 정의가 날로 사라져 간다는 아우성이 도처에서 들려온다. 죄를 저지른 의혹이 분명한데도 최고권력자와 가까운 사람이면 사정기관이 면죄부를 마련해 주느라 애쓰는 모습이 분노를 넘어 애처롭게 보일 정도다.
반면에 최고권력자의 비위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과 처신을 하면 밥줄이 날아가거나 엄중한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측근의 비리를 들추면 근거 없는 음해로 몰아붙인다. 국가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어도 진상규명은커녕, 도리어 겁박당하기 십상인 게 주권을 가진 국민의 참모습이다.
검찰 수사결과는 최고권력자의 지시와 다름없는 가이드라인을 벗어난 적이 없다. 최고권력자의 말이 곧 법이라는 비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부정과 비리의 본질을 희석시키느라 곁가지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해 억울한 피해자의 염장을 지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최고권력자의 혈육보다 더 가깝다는 인물과 연관된 온갖 의혹들은 상식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억지로 ‘정의의 칼’을 비껴가고 있다. 대기업들의 팔을 사실상 비틀어 그러모은 수백억 원대의 돈으로 수상한 재단을 만들었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시치미를 떼도 정당한 일로 취급된다.
전문가와 관계자의 절대 다수, 심지어 시험문제의 정답까지 ‘외인사’(外因死)라고 증언함에도 ‘병사’(病死)라고 우겨 국가권력을 가해자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만들려는 대학병원 의사도 불의(不義)의 손과 연결된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경찰진압과정에서 사망했음에도 부검 후 사망원인을 변경해 가해자 측의 혐의를 왜곡하고 악용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20대 총선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현역 국회의원 33명 가운데 새누리당 의원이 11명, 제1야당 대표를 포함한 범야권 의원은 22명인 사실도 ‘불의’의 상징이다. 게다가 새누리당 의원 중에서도 이정현 대표, 최경환, 윤상현 의원, 현기환 전 청와대정무수석 같은 친박계 실세들이 포함되지 않은 점은 정의의 핵심인 공정성의 현저한 위반이다. 과거 정권에서는 검찰이 선거법 위반 기소 때 여야 균형을 맞추는 시늉이라도 했다.
무엇보다 검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현역 의원 12명 중 새누리당 친박계인 김진태·염동열 두 의원만 기소하지 않은 것은 불의의 속셈을 지나치게 드러내 보인 증좌다. 오죽하면 선관위가 검찰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즉시 재정신청을 냈겠는가. 김진태 의원의 경우 ‘권력의 주구’라는 악역을 자처한 데 대한 보상이라는 뒷담화가 무성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폭로 사건 수사 때도 친박 인사는 하나같이 면죄부로 특별대접을 받은 반면, 비박계 인사들은 속속들이 수사를 받고 기소돼 뒷말을 낳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정의를 세우는 일임에도 권력은 이를 국가 발전의 장애물로만 여긴다. 롤스는 ‘모든 사람은 사회 전체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가진다’고 일갈했다. 다수가 누릴 더 큰 이득을 위해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공리주의적 정의까지 비판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정의의 개념을 놓고 소피스트들과 토론하다가 이렇게 쐐기를 박는다. “정의로운 다스림의 본질은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네. 다스림으로 이익을 얻는다면 올바른 다스림이라고 할 수 없지.” 트라시마코스 같은 소피스트들이 “정의는 다스리는 자의 이익이다. 다스리는 자가 옳다고 정한 규칙을 따르면 그것이 결국 옳은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자 반박하면서 한 말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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