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보다 더 나쁜 건 시인하지 않는 오만이다. 퇴진압력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도 내가 뭘 그리 큰 잘못을 저질렀느냐는 태도다. 명예로운 퇴진을 건의한 원로 인사에게 박 대통령이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라고 반문했다는 전언을 청와대가 부인했지만, 이제 국민은 그런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거짓말을 너무 자주, 많이 한 탓이다. 엄청난 잘못이 새로이 불거질 때마다 ‘선의’(善意)로 포장해 오리발을 내미는 꼴이어서 더욱 그렇다.
대통령의 생각을 전하는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최순실과 공범이라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며 객관적인 증거는 무시한 채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일 뿐”이라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여기에다 “인격 살인”이라는 표현까지 써 어안이 벙벙하게 했다. 전혀 사실이 아니라면, 그동안 대통령의 충견 같았던 검찰이 “99퍼센트 입증 가능한 것만 적시했고 앞으로 뇌물죄도 추가로 수사할 것”이라고 발표한 건 소설이란 얘기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은 내 욕심 때문이 아니라 나라의 발전을 위해 기업들에 돈 조금 내라고 한 게 죽을 죄라도 되느냐는 투다. 연설문이나 정부 기밀문서를 유출한 것과 ‘최 선생님 컨펌을 받으라’고 한 것 역시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한 일인데 왜 난리냐는 거다. 나라 밖에선 워싱턴 포스트가 ‘박근혜 스캔들’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던 ‘워터게이트’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라고 평가했음에도 말이다.
이러니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같은 맹목적 충성파들이 “단 돈 1원도 먹지 않은 대통령을 어떤 죄목으로 탄핵할 것이냐”며 반대 시위를 벌이는 꼴불견을 연출한다. 박사모 회장이라는 인물이 사상 최대 규모인 190만 명이나 운집해 5차 촛불집회를 연 26일 “너무나 강렬한 첫사랑”이라는 오글거리는 말까지 동원해 홈페이지 글을 올린 것은 비루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순장조’를 자처하며 ‘유다론’을 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충성과 헌신의 대상이 국민인지, 국기를 문란한 대통령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호위무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예수 팔아먹는 유다가 돼 달라,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가 돼 달라는 것 아니냐”는 발언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다. 하긴 자신을 ‘내시’라 불러도 상관없다는 이 대표이니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친박은 어느덧 ‘국민의 머슴’은커녕 ‘사이비 종교집단 같다’는 말까지 듣게 됐다.
다른 꼴불견 인물들도 흡사하다. “촛불은 바람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며 촛불시위를 폄훼한 친박 돌격대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춘천 지역구 주민들의 엄청난 반발에도 국민우롱 발언을 이어간다.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뭘 잘 하는지 모르면서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는 괴이한 조사응답 결과도 눈길을 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이 잘 한다고 평가한 응답자들에게 ‘어떤 점에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한 가지만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고 물었더니 가장 큰 이유가 ‘모름’이었다고 한다.
친박들은 자신들의 무모한 충성이 최순실 게이트를 낳은 원흉이라는 사실을 애써 부인한다. “대통령이 있는 곳이 곧 집무실이다. 대통령은 아침에 일어난 것이 출근이고 자는 것이 퇴근”이라고 해괴한 해명을 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같은 과잉충성파도 국정농단을 키운 사실을 모르쇠로 일관한다.
누리꾼들은 ‘피부도 거꾸로, 주름도 거꾸로, 민주주의도 거꾸로’라며 비아냥거린다. 배신자를 지옥까지 따라가서라도 보복할 듯한 성정을 지닌 박 대통령의 인재등용 제일덕목이 충성심이었으니 그럴지도 모른다.
청와대는 귀가 아닌 입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다섯 차례의 촛불집회 때마다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아무리 시간끌기에 매달려도 박 대통령과 충성파들은 이제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를 멈추려 했다는 고사성어 ‘당랑거철’(螳螂拒轍) 신세나 다름없다.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걱정한다면 대통령을 무조건 옹호하고 호위할 게 아니라 퇴진의 결단을 읍소라도 해야 한다. 4·19혁명 때는 이승만 대통령이 주저하자 허정 외무장관과 김정열 국방장관 같은 각료가 하야를 건의해 국민의 뜻을 받들도록 했지 않은가.
이 글은 내일신문 11월28일자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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