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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성숙한 종교’ 보고싶다

입력 : 2008-09-05 17:32:52수정 : 2008-09-05 17:32:54

영국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종교의 본질을 ‘자기중심주의의 극복’이라고 규정했다. 어떤 종교가 참 종교냐 하는 잣대는 신도들을 이기적으로 만드느냐 희생적으로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대 인도 아소카왕의 비문에 적힌 칙령 8호는 종교의 배타주의와 획일주의를 한층 구체적으로 경계한다. “누구나 자신의 종교만을 숭앙하고 다른 종교를 저주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면서 다른 종교에도 봉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자신의 종교에 무덤을 파는 것이며 다른 종교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다른 종교의 가르침이나 교의에도 귀를 기울이라.”

스위스 종교학자 한스 큉은 “종교 간의 대화 없이 종교 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의 평화 없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한발 더 나간다.

첨예한 종교편향 논란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 더없이 적절한 경구들이다. 비교종교학자인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교수는 이 같은 한국의 종교 갈등을 ‘열린 종교를 위한 대화’로 풀어나가라고 오래전부터 설파해 온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생각이 설득력을 지니는 까닭은 극히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여서다. 다양한 종교 저작을 통해 오 교수가 끊임없이 제기하는 문제는 경전이나 교리 절대주의를 포함한 근본주의를 버리고 다원주의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와 ‘예수는 없다’(이상 현암사)가 대표적인 책이다.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는 기독교인이나 다른 비불교신자들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다. 그의 박사학위논문 주제가 ‘불교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인데다 캐나다 대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과목도 불교이기 때문이다. 그의 저작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책 역시 특정 종교를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올곧게 이해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

지은이의 눈에 비친 불교의 모습을 기독교와 아우르면서 힘을 주지 않고 쉽게 풀어나간다. 저자는 특히 종교 간의 대화가 상대에게 거울을 들어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유한다. 혼자 있을 때보다는 비교할 상대가 있을 때 본 모습이 더 두드러져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나온 ‘예수는 없다’는 근본주의적 성향의 한국기독교에 대한 성찰이다. 역사적 산물인 성경을 문자 그대로만, 절대적인 것으로 해석하지 말고 ‘예수에 대한 종교가 아니라 예수의 종교’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 예수는 없다’가 더 적절한 제목일 것 같은 이 책이 주는 메시지도 개방적이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교리는 변할 수 있는 것이며, 변해야 하는 것이다. 성서는 역사와 다른 내용을 많이 담고 있고, 역사에 없는 허구도 있다. 불교와 기독교는 결국 같은 말을 하려 한다. 기독교인의 사명은 이교도를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존재 이유를 가진다. 종교의 공존만이 답이 될 수 있다.’ 저자는 한국의 불교와 기독교가 도시화·산업화로 말미암아 접촉이 잦아지면서 상호 이해와 포용보다는 긴장과 갈등이 커졌다고 진단한다. 그는 갈등 극복 방안으로 원효의 화쟁론에 주목한다. 원효가 화쟁론에서 한 면만 절대화하지 말고 양쪽을 보완적으로 보라고 권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한 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뮐러와 “산 정상은 하나지만 올라가는 길은 여럿”이라는 말을 남긴 힌두교 개혁가 라마크리슈나의 목소리가 절실하고 크게 들리는 게 ‘지금 여기’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