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재에서

집값·땅값이 아닌삶의 가치를 높이는 도시

 입력 : 2008-08-22 17:26:49수정 : 2008-08-22 17:26:57

세계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이상적인 도시라면 대개 브라질의 생태도시 쿠리치바를 먼저 든다. 쿠리치바에 붙은 찬사를 꼽기엔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로마클럽은 ‘희망의 도시’라고 명명했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로 뽑았다.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는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라는 최상의 헌사를 바쳤다. 이 밖에도 ‘꿈의 도시’ ‘존경의 수도’ ‘문화생태도시’ ‘생태혁명 도시’ ‘도시혁명의 선구자’ ‘지속가능한 복지·환경 도시’ 등 끝이 없다.

오늘의 쿠리치바를 만든 주역이 세 차례에 걸쳐 25년간 시장을 지낸 건축가 자이메 레르네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대로다. 레르네르가 건설한 쿠리치바도 알고 보면 영국의 전원도시 창시자 에베네저 하워드(1850~1928)와 미국의 도시철학자 루이스 멈퍼드(1895~1990)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20세기가 낳은 걸출한 도시 문명비평가 멈퍼드는 “20세기 초의 두 가지 위대한 발명은 인간에게 날개를 달아 준 비행기와 양질의 주거장소를 약속한 전원 도시였다”고 평가했다.

하워드가 1898년 처음 출간한 ‘내일의 전원도시’(한울아카데미)에서 그렸던 이상적인 도시는 도시와 농촌의 장점만을 결합한 계획도시였다. 전원도시는 원래 3만명 안팎의 인구, 주거밀도, 면적이 제한되면서도 상업, 공업, 행정, 교육 등 도시의 본질적 기능을 수행하며,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충분한 도심 녹지를 갖춘 것이었다.

그리스의 유기체적 관념을 도시계획에 적용하고 도시에 인간 척도를 회복한 게 특징이다. 하워드의 가장 위대한 공헌도 바로 그것이다. 도농 통합을 위해 하워드는 신도시 주변에 영구적인 농업지대를 설치하도록 했다. 전원도시의 가치는 도농의 결합 외에 균형 잡힌 공동사회, 자족주의가 그 핵심이다.

하워드의 전원도시론은 ‘에코 빌리지’의 출발점인 셈이다. 그의 아이디어는 레치워스, 웰린 두 전원도시를 통해 성공적으로 구현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신도시 개발 정책의 초석을 놓았다. 하워드의 전원도시 사상은 근린주구 개념의 형성, 미국의 그린벨트 타운 건설 등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분당, 일산, 평촌을 비롯한 한국의 신도시들도 실은 하워드 개념을 본받은 것이다. 하지만 자급자족기능 확보에 실패해 이상적인 전원형 신도시가 되지 못한 채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한 실정이라는 평가절하를 감수하고 있다.

하워드는 “도시 개혁가는 가장 먼저 인류를 위해 지구를 최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자신의 도시개혁관을 피력한다. 하워드는 건축가나 도시계획가라기보다 전원도시운동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려 애쓴 실천가였다. 110년 전 생경한 ‘전원도시’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을 당시 영국의 더 타임스 같은 권위지마저 “현실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한 이상주의자의 계획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던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워드를 추앙하는 멈퍼드는 그의 명저 ‘역사속의 도시’(명보문화사)의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는 도시로 하여금 모성, 생명을 양성하는 기능, 자발적 활동, 오랫동안 백안시되고 억압되었던 공생적 결사체를 부활시키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도시는 사랑의 기관이 돼야 하고, 또한 도시 최선의 경제는 인간의 보호와 양육이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도시인 ‘전원도시’가 평범한 소시민들이 창조적이고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공간임을 역설한 것이다.

행정복합도시, 위례(송파) 신도시, 서울 강북 뉴타운에다 또 무슨 신도시 건설계획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땅값·집값만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새겨 볼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