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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영화 ‘귀향’ 열풍과 ‘평화의 소녀상’ 건립 붐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출연한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이 ‘기적’이라는 표현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귀향’이 지난 주말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하자 나온 반응이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흥행과는 거리가 먼 스토리여서 18일 만에 이 정도의 관객을 모은 건 기적임에 틀림없다. 


 참아내기 어려운 민족의 고통을 너무나 생생하게 담고 있어 감독도 한때 개봉을 포기하려 했을 만큼 영화는 참혹하다. 위안부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정신 건강을 위해 촬영 내내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7만5000명에 가까운 개미 후원자들의 뜨거운 정성과 배우·제작진의 재능기부가 없었으면 빛을 보기 힘들었던 ‘작은 영화’여서 더욱 슬픈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입소문을 타 며칠 전부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댈러스의 극장에서 개봉하고, 미국·영국·캐나다 등지에서 디지털로 개봉하는 국제적 개가를 올리고 있는 게 더욱 값지다.

                                                                                               

                                                                            <영화 귀향 포스터>


 무엇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영화관으로 인도했을까. 관객들은 하나같이 “(역사와 할머니들의 아픔을)잊지 않으려고” 보러왔단다. 13년 동안 ‘귀향’ 제작에 매달렸던 조정래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이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의 문화적 증거’다. 일본 적개심에 불타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반성하면서 나왔다는 소감이 눈길을 끈다.


 이 열풍은 지난해 12월28일 피해자 할머니들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은 채 일본의 요구를 들어준 박근혜 정부의 합의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식지 않고 있다는 방증의 하나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1절 경축사에서 “피해자 할머니가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중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고 거듭 자화자찬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합의 무효화를 요구하고, 국민의 과반수가 ‘12·28 한일합의’는 잘못됐다고 비판하고 있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일본 정부가 합의를 어기는 노골적인 언행을 일삼고 있음에도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언급을 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는 사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징물인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려는 노숙농성이 엄동설한을 거쳐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 철거·이전설이 제기된 이후 지속되던 반대 농성이 공식적으로는 중단됐으나, 뜻있는 학생들은 오늘도 쉼 없이 이어간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평화의 소녀상’ 세우기 열풍이 방방곡곡에서 불고 있다. 올 3월 들어 부산과 충남 아산에 새로 건립된 것을 포함해 모두 40개의 ‘평화의 소녀상’이 시민들의 뜻으로 세워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대구, 충북 제천, 충남 논산, 전남 순천 등 건립계획을 발표한 곳도 줄을 잇는다.

 

  나라밖에도 미국, 캐나다 등 아홉 곳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됐다. 일본 정부가 ‘평화의 소녀상’ 철거전략에 열을 올릴수록 역풍이 분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불가역적 해결’을 합의해 준 우리 정부는 이런 물결을 얼마나 감지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초등학교 6학년 국정 사회(역사)교과서 실험본에 있던 ‘위안부’라는 용어와 사진을 삭제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눈길도 곱지 않다. “초등학생이 ‘위안부’ ‘성노예’라는 표현을 학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 빠졌다”고 교육부가 해명했지만 논리가 군색하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대중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니 생뚱맞다. 충북 충주시의 한 복지단체 어린이들은 지난 토요일 선생님들의 인솔로 영화 ‘귀향’을 관람하고 역사인식을 새롭게 했다고 한다.


 영화 ‘귀향’이 300만 관객을 돌파하고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 외교부·교육부 관리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일본 시사회 관객들이 ‘아베 총리가 꼭 봐야할 영화’라고 했다는 뒷얘기는 들었을 게다. 기미년 독립운동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던 3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이 이 경우에는 적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