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미국에서 열여덟 살 고교 3년생이 시장에 당선해 세계적인 뉴스가 됐다. 한국에서라면 투표권(선거권)도 없는 청소년 마이클 세션즈가 51세의 현역 시장 더글러스 잉글스를 2표차로 이겼기 때문에 더욱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인구가 적은 미시간 주 힐스데일 카운티지만, 선거 당시 후보의 나이가 그리 큰 쟁점은 아니었다. 주민들은 오히려 젊은이가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고 열정어린 선거 운동을 펼친 것에 감명 받았다고 한다. 세션즈는 오전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에 시장직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이보다 앞서 독일에서는 2002년 열아홉 살 여성 안나 뤼어만이 녹색당 비례대표로 연방 국회의원에 선출돼 ‘세계 최연소 국회의원’ 신기록을 세웠다. 녹색당이 뤼어만을 비례 대표로 공천한 건 단지 인기를 얻기 위한 깜짝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는 활발한 의정활동 덕분에 2005년 총선에서도 비례대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뤼어만은 15세 때 이미 녹색당에 가입해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열 살 때부터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의 환경보호 지킴이와 학교 학생회, 녹색당 산하 녹색청소년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2005년 한국을 방문한 안나 뤼어만 독일 국회의원
상당수 국가들이 투표권뿐만 아니라 국회의원과 시장 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를 18세 이상으로 규정해 놓았음에도 한국은 투표권조차 19세로 묶어놓았다. 새누리당의 억지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미래 세대의 주축이 될 청소년들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청년정치’ 바람이 거세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전 세계 국가의 90%가 투표권을 18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한국과 일본만 19세 이상이다. 보수적인 일본도 18세 이상으로 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미 상당수의 일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민투표 참여자격을 18세 이상으로 했다.
한국은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피선거권도 25세 이상으로 제한해 정치참여 후진국임을 자처하고 있다.
군 징집, 공무원 시험 응시, 결혼, 도로교통법에 따른 운전면허 취득의 기준연령이 모두 18세 이상인 것과도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유독 정치에 관해서만 18세까지는 안 된다는 논리는 옹색하고 설득력이 없다.
우리나라 보수정치인들과 기성세대는 고등학교 졸업 이전에는 이성적인 판단능력을 갖추지 못해 선거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2013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19세 선거권 규정이 합헌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청소년은 정치적·사회적 시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으며 현실적으로 부모나 교사 등 보호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둘째, 물질적·정신적 측면에서도 보호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자기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해도 ‘묻지마 지지’를 보내는 60대 이상 어르신들은 정상적인 판단력을 지닌 분들인가? 우리 청소년들의 의식수준은 몰라보게 높아졌고, 정보소통 능력도 어르신들보다 훨씬 우수하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기주의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수도권 초접전지역이 많아서 (20대 총선 때는) 안 된다.” 정치개혁은 안중에도 없고 기득권만 지키겠다는 심산이다. 정치개혁을 한다면서 여야 모두 70대나 70대에 가까운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아직도 나이가 벼슬이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올법하다.
한국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은 청소년의 정치참여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19세 미만은 정당에 가입할 수도 없고, 선거운동을 할 수도 없다. 선거운동기간 외에 통상적인 정치운동조차 청소년들에게는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니 40대 국가 최고지도자 신드롬을 보이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
20대 국회의원 예비후보 등록 현황을 봐도 젊은이들을 위한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총 843명의 예비후보 중 60대 이상이 80%나 차지한다. 30세 미만의 후보는 단 5명, 30세 이상 40세 미만은 17명에 불과하다. 70세 이상도 30세 미만보다 많은 16명이다.
역대 최고령자들이 모인 19대 국회에서 65세 이상 노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내용으로 발의된 법안이 청년에게 도움이 되는 법안의 4배에 가깝다는 통계도 나왔다. 아무리 낯 두꺼운 국회의원이라지만 미래를 위한 정치를 한다는 허언은 이제 그만 해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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