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지도사 자격시험은 노후 대비와 취업난 시대를 헤쳐 나가는 인기 종목의 하나다. ‘경비지도사 한권으로 끝내기’ 같은 수험서적은 물론 교육방송(EBS)에서 관련 강좌를 운영할 정도다. 인터넷 강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경한 경비지도사는 신변 보호, 국가중요시설 방호, 시설 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경비원을 효율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다. 경비지도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대통령 훈령인 ‘국가대테러활동지침’이 개정될 때마다 인터넷에서 ‘개정문을 올리니 참고하세요’라는 안내문을 곧바로 발견하곤 한다.
‘테러방지법’ 제정을 촉구해 온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이 누군지 모른다고 답변했다. 황 총리는 그에 앞서 범정부 차원의 대테러대책기구가 있는지 묻자 “상시적인 그런 기구는 따로 없다”고 말했다. 서울올림픽 유치 직후 뮌헨올림픽 ‘검은 9월단’ 테러사건 같은 것을 막기 위해 1982년 공포된 ‘국가대테러활동지침’에는 국무총리가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을 맡는다고 명시해 놨다.
그러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로 테러 위협이 한층 높아졌다며 국회를 전방위 압박하고 있는 올해, 단 한 차례의 국가테러대책회의도 열리지 않은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슬람국가(IS) 테러가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지난해에도 정부는 IS관련 국가테러대책회의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테러 방지를 위한 기본법 체계가 없는 것을 IS도 알아버렸다”고 언급한 게 역설적으로 들리지 않은가? 국가테러대책회의는 정기회와 임시회를 두고, 정기회는 반기 1회 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대통령 소속 하에 둔다고 명시된 국가테러대책회의의 구성원은 국무총리·외교부장관·국방부장관·국가정보원장·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국가안보 관련 정부 수장들이 망라돼 있다. 테러대책상임위원회와 테러정보를 통합관리하는 컨트롤타워인 테러정보통합센터도 갖췄다.
대통령 주장처럼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과 기능이 엄연히 존재하는 데도 활용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주요 테러단체 조직원에 대한 출입국통제, 국가기간시설에 대한 폭탄테러, 항공기 납치와 폭파,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인질극 같은 주요 테러 요소도 현행법으로 얼마든지 예방이 가능하다. ‘테러방지법’이라는 이름의 법만 없을 뿐이다.
인천국제공항에 이어 인천항구의 보안 시스템이 외국인에 의해 구멍이 뚫리는 심각한 상황을 불러온 것도 테러방지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얼마 전 중국인 2명과 베트남인 1명이 인천국제공항으로 밀입국한 사건과, 선박 편으로 인천항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외국인이 밀입국한 사건도 모두 출입국 관리 시스템에 허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철통 보안이 필요한 지역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법타령을 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기로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유례없이 한꺼번에 국회를 찾아가 테러방지법안 처리를 압박한 것은 정치적 여론몰이 의도가 짙게 풍긴다. 북한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테러·납치 대상이 됐다는 한국 고위직 인사들의 명단 첩보를 때맞춰 쏟아 낸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야당과 뜻 있는 국민들이 정부·여당의 테러방지법안에 반대하는 것은 국가정보원의 권한만 확대해 수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얘기는 이미 수없이 지적됐다. 국정원은 최근까지 간첩을 조작하고, 무고한 국민의 생명까지 앗아간 전과가 적지 않다. 대통령 선거 개입 댓글 공작을 벌이고, 민간인 도청 의혹사건을 비롯해 기본권·인권침해 사례가 여러 차례 적발됐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의 ‘셀프개혁’만 주문할 뿐 국민의 신뢰를 얻는 획기적인 개혁조치는 외면해 왔다. 국정원이 권력 오·남용을 막고 국민의 신뢰를 확고하게 얻기까지는 테러방지법의 주도기관이 돼서는 곤란하다. 컨트롤타워를 국무총리실에 둔다는 우회방법을 통하더라도 국정원에서 파견한 직원에 의해 운영된다면 사실상 국정원이 주도하는 것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걱정이 많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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